[책 리뷰] 운동의 뇌과학 - 인생을 바꾸는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
제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운동과 햇빛이었습니다. 물론 우울증에 걸린 후 처음부터 운동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병이 원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동반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그 무기력감이 저를 짓눌러 지하를 뚫고 들어갔을 때, 제가 했던 것은 그냥 밖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무기력을 기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이 아주 미약한 시작이라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스쾃 한 개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단 한 개로 시작했던 미약한 시작은 두 번째가 되고 세 번째가 되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습관이 되었습니다. 습관은 그 자체로 생명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더 이상 제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그 습관이 저를 밖으로 끌고 나가 스쿼트를 하게 만들더군요.
그렇게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스쾃 100개를 100일 동안 매일 한 적도 있었고, 40 평생 한 개도 못하던 턱걸이를 9개까지 늘리는 발전도 이루었습니다. 예전에는 운동을 하면 몸이 아팠는데 이제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픕니다. 운동은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우울증 자조모임에서도 햇빛보기와 운동하기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운동은 운동은 뇌의 입장에서는 항상성을 깨는 위협이기 때문이죠. 얼마 전 읽은 책 '운동의 뇌과학'은 운동을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는 뇌가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책의 저자 제니퍼 헤이스는 뇌 과학자입니다. 그리고 산후 우울증과 강박장애를 운동으로 극복했죠. 저는 엔지니어였고 그 녀는 뇌과학자라는 점은 다르지만 운동으로 신경정신적 문제를 극복했다는 것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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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뇌가 게으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으른 것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 뇌의 잘못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미 기아가 실재적 위험이 아닌 시대에 살지만, 우리의 뇌는 수만 년 전의 선사시대의 환경에 맞춰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뇌가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만, 인류의 역사(백만 년)에 비해서 선사시대에 있던 위협(곰과 같은 야수로부터의 위협)이 완전시 사라진 시대가 고작 200년도 안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는 갑니다. 100만 년 전 시작된 인류의 총역사를 1년으로 본다면, 산업혁명이 시작된 200년 전은 12월 31일 오후에 불과합니다. 우리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역사에 비해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턱없이 적었던 것이죠.
아무튼 우리의 뇌는 원시시대를 기준으로 우리가 먹는 것에 비해 충분히 움직이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한두 시간 이상을 달렸을 것입니다. 그것도 평평하지 않은 울퉁불퉁하고 장애물이 많은 지형을 뛰어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냥을 한 뒤에는 게으른 생활을 통해 몸을 회복해야 했기에 뇌는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게으른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배고플 때마다 항상 먹을 것이 있죠. 이러니 뇌가 헷갈릴만하죠. 1년 내내 먹을 것이 부족했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1~2시간을 달려야 했는데 갑자기 몇 시간 전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죠. 뇌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라 언제 또 먹을 것이 없어질지 모르니 평소대로(선사시대의 습관대로) 몸을 놀리면서 많이 먹고, 몸에 에너지를 축적하려 할 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결국 내 탓이 아니었어!
이 책을 읽으며 인지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운동을 하기 싫어했던 것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 환경 탓이지 제 탓이 아니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몸을 가지고 어찌 됐든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할 테니까요.
내 탓은 아니지만 내 책임인건 맞습니다.
좀 억울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필요한 지방덩어리들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온전히 내 탓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내 책임이긴 하죠.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 밖에 없으니까요.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니까요. 그런데 고맙게도 책 '운동의 뇌과학'에는 운동을 시작하고 싶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작게 시작하라는 것이죠. 아마 제가 처음부터 스쿼트 100개를 목표로 시작했으면 제 뇌는 그 시작을 강력하게 저지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지금쯤 스쿼트 100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대신 스쿼트 1개를 목표로 시작했죠. 그렇게 작게 시작하니 저의 뇌는 "그래 뭐 1개 정도는 괜찮아"라고 반응했고, 그 틈을 파고들어서 스쿼트를 매일 1개씩 하는 습관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습관은 스스로 유지되려는 습성과 에너지가 있기에 그 습성과 에너지를 이용해 깊은 무기력감과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광고를 받아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이 책에는 정신적 문제를 가지신 분들이 처음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과 팁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저자 자신이 불안장애등을 앓았던 뇌과학자이자 운동학과 부교수라서 그런지 탄탄한 과학적 근거가 가득하고 책의 구조가 논리적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만약 현재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이런저런 핑계가 머릿속에서 떠올라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분이시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