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억중 Mar 12. 2021

장식에 대하여 (5)

빛나는 장식

일러스트 김억중

비스 성당 내부 공간의 손길에 몸을 맡겨보면, 어디에서든 부분에서 부분으로 다시 부분에서 전체로 끝없이 이어지는 벽면이나 기둥의 장식을 따라 다음 장소를 향해 자연스럽게 걸음을 내딛어 움직일만한 힘이 느껴진다. 장식들은 주제와 변주를 반복해가며 시작도 끝도 없는 듯, 우리의 눈을 사로잡아 놓아주질 않는다. 시선이 천장에 다다르면 지붕이 마치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것처럼 그 회화적인 착시효과에 젖어든다. 그림 속 천사를 보고 있노라면 천상의 소리가 지상에선 헨델의 ‘메시아’가 귓전을 맴도는 것 같다. 그 음 하나하나가 하늘에 다다를 만큼 곱고 투명하게 울리는 음향 공간!


찬란한 장식이 끝나는 경계 지점에 이르면 그 긴장과 대비되도록 남겨진 흰 벽면이 있어 이완된 마음이 일어 벅찬 감정을 진정할 수 있다. 여기선 장식도 숨을 쉰다. 그렇게 하얀 칠만으로도 벽면은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다. 어쩌면 저 순백의 벽면이야말로 천상세계까지 이어가는 찬미의 통로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당은 회화와 조각, 건축이 한 몸을 이루고, 그 몸체와 장식은 길항하며 상생하는 생명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여기서 장식은 단순한 껍데기 치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몸체의 주요한 한 부분을 이루는 구성요소이다. 완성도로 치자면 그렇게 비스 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절정에 근접한 것이었다. 그 곳은 어둠 속에서 절제된 침묵의 빛만으로도 성스런 공간을 은유할 수 있었던 중세 성당 공간(적어도 고딕 말기까지는)과는 판이한 것이었으며, 고전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조화와 균형의 문법이 엄격하게 지켜지던 르네상스 시대의 성당과도 궤를 달리 하는 것이었다. 


비스 성당을 만난 것은 내겐 큰 선생 한 분을 모시게 되는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선생께서 몸소 뼈대와 장식의 본질이 무엇인 지를 깨닫게 해주셨고, 바로크 양식에 대한 내 온전치 못한 편견을 바로 잡아 주셨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바로크 공간 안에서의 장식은 달라진 빛의 조건과 벽, 기둥, 천장과 같은 일련의 형태요소 사이의  인과관계, 이른바 총체적인 시스템 안에서 본질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구성요소였던 셈이다.  


비스 성당의 경우, 고딕 성당 시절 성경에 나오는 교리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했던 스테인드글라스는 대부분 사라지고 자연광을 듬뿍 받아내는 유리창이 끼워져 있어 내부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밝아졌다. 


비스 성당 출입구 전경 


내부공간이 빛으로 충만해진 만큼 성당 구석구석 그 표면의 세밀한 형상까지 민감하게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감당하려면 아무래도 정교하고 세련된 장식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평면의 변화에서 비롯되는데, 이를테면 종래 성당의 양쪽 측면 공간(aisle)이 사라지고, 가운데 집회 공간(nave)을 둘러싸는 외벽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크게 좁혀진 것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햇빛이 중간에 걸러지는 과정 없이 곧바로 실내에 유입되므로 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으로 충만한 조건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빛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평면 형식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이어지는데, 종래의 장방형 평면을 따르지 않고 타원형이나 곡선을 반복 교차시켜 변화무쌍한 공간들이 서로 환하게 트인 역동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벽체는 구조체 위에 하얀 치장 벽토로 살을 부치면서 쇠시리 장식, 돌림띠 등의 연쇄적인 표면 처리를 하였으며 때로는 회화, 조각 등이 가미되면서, ‘빛나는 장식’에 부응하는 의장기법으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바닥과 천장, 벽면과 기둥 어느 형태요소 할 것 없이 이들과 긴밀하게 결부된 장식은 마침내 빛으로 축복받을만한 위상을 얻었던 셈이다. 여기서 장식은 바로크 시스템 안에서 그럴만한 자신의 위상을 찾아냄으로써 빛의 바다 위를 자신 있게 항해하며 기쁨을 선포하는 전도사로 등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스 성당 평면 및 외관


비스 성당 천정부분


만일 비스 성당의 환했던 실내공간을 또 다시 어두워지게 할 만큼 과도한 장식으로 남용되었다거나, 형태요소와 장식이 서로 상충되어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면, 장식은 이내 사치와 허영의 산물로 전락했을 것이며 몸체와 정신에 통합되지 못한 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슬프디 슬픈 군더더기로 밀려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 빛나는 공간과 눈부신 장식 사이의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기 위해 새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된 건축가의 표현 역량이 얼마나 절실했었을 지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요컨대 빛과 공간 사이의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려 했던 건축가의 손길 끝에 바로크 시대 새로운 형태언어의 문법과 수사학(장식)의 발단이 있었다.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교구 성당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으로 손꼽히는 슈타인하우젠성당의 건축가 도미니쿠스 짐머만(Dominikus Zimmermann, 1685-1766)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가 쏟아 부었을 노고를 생각하면서 나 또한 그가 바쳤던 건축가의 길을 묵묵히 따라 가겠노라 다짐해본다.

 

오랜 만에 비스 성당 사진이 들어 있는 앨범을 꺼내 들어보니, 상단에 쌓인 먼지가 심상치 않다. 이미 굳어있거나 끈적끈적할 만큼 변질되어 있으니 툴툴 턴다고 털리는 먼지가 아니었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손끝에 묻어난 먼지는 시커먼 때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첩 옆면에 새까만 지문이 찍혔고, 스친 옷자락에는 수습이 불가능할 만큼 견고한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연쇄반응처럼 이어지는 먼지의 응징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순간 짜증이 일었지만, 다 내 탓인걸 어찌하랴. 이렇게 당해도 싸지. 섬뜩한 먼지! 그걸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코 건드리다니... 자주 꺼내어 보고, 닦아내지 못한 내 탓이 크지. 어찌 주제넘게 먼지 탓을 했을까. 정작 닦아내야 했던 것은 먼지가 아니라 내 마음일 뿐인 것을.


그러고 보면 비스 성당의 가치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뒤늦게라도 살펴보려 하지 않았던 것도 지독하게 절어 있던 내 마음속의 먼지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비즈 성당을 새삼스럽게 발견했고 경이로움을 대해 언급하며 경의를 표했다 해서 내 취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양식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고딕이나 바로크보다는 로마네스크 쪽에 내 마음이 온전하게 가있다. 천년의 침묵과 고요가 깃든 공간에 한 동안 더 머무르고 싶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바로크 건축은 내게 빛나는 장식으로 뒤늦게 찾아왔다. 그런데도 주변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가시에 찔린 듯 여전히 편치 못한 게 사실이다. 카탈로그에서 물건을 고르듯, 바로크건 로코코건 지나간 서구 양식들을 별다른 고민 없이 소비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가 개탄스럽기 때문이다. 웬만큼 먹고 살만한 집이면 서구 고전 양식을 흉내 낸 복고풍 가구들이 중산층 신분을 인증받기라도 하는 징표처럼 각광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내 공간 속에 얼마나 서로 잘 어울리는지에 대한 검증도 없이 국적불명의 가구들을 집안에 들여 놓는 것만으로도 고품격 인테리어를 보장받는 것처럼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듯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가구들을 방안 그득 모셔놓고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구나 소품들이 집안의 ‘빛나는 장식’에 기여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허기진 마당에 가릴 것 있나. 공갈빵이나 짝퉁이면 어때, ‘바로크 양식’이면 됐지. 그렇게 박제처럼 겉모양으로만 남은 껍데기에 휘둘려 생을 가로막는 세월이 그럭저럭 흘러가다 보면 몸보다 껍질의 덩치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뭔 상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그리하여 껍데기가 몸을 간섭하고 급기야 진면목을 대신하고야 만다. 남부럽지 않게, 있어 보이는 데 뭐. 그게 그냥 ‘가구의 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살던 대로 살다보면 ‘빛나는 장식’과 더불어 참다운 주거의 기쁨을 되찾아 누리려는 의지는 점점 더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안타깝게도 모르쇠 각질은 철면피라는 점이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결단이 필요하다. 스스로 칼을 들어 생살을 파고드는 각질을 벗겨내 폐부 깊숙이 한숨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각질은 무섭다. 각질 제거용 비누, 각질 제거용 화장수, 각
질 제거용 크림, 각질 제거용 팩을 해도 부드러워지지 않는
다. 각질 제거용 돌을 쇠를 마모시키는, 각질은 무섭다. 내게
와 닿는 생의 감촉, 섬광, 내 안에 파도치는 생기 느낄 수 없
다. 생을 안아도 내 몸은 열리지 않아 비명만 나온다. 딱딱해
진 혀는 더 이상 생의 감미를 알 수 없고, 딱딱해진 손은 생을
어루만질 수 없고, 딱딱해진 귀는 생의 음향을 들 을 수 없고,
딱딱해진 코는 생의 체취에 들뜰 수 없다. 생살을 파고드는
각질은, 무섭다. 내게 칼을 들게 한다.
[양선희, ‘각질은 무섭다’ 전문]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각질을 벗겨내는 일은 분명 괴롭기 그지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각질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 비례할 만큼 쾌감 또한 큰 것도 사실이다. 아픈 만큼 성숙하게 될 장식의 빛!, 가구의 힘!, 주거의 기쁨! 도려내는 아픔과 함께 본래의 속살을 되찾는 기쁨을 제대로 누리려면 아무래도 고전(古典)으로 돌아가 그 속에 담긴 값진 경험들을 살펴보는 것이 제 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고전 텍스트에 나오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생을 어루만지며 그 자리, 그런 모습의 빛나는 장식과 디테일로 빚어진 절정의 건축미학을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소하면서도 담백하기 그지없는 단순한 수단만으로도 몸의 감각을 일깨워 깊은 감동으로 이끄는 장식의 힘을 보여준다. 그 ‘이유 있는 장식’의 진면목을 알아야 비로소 무엇이 생살이고 무엇이 각질인지를 구별하여 바로 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장식에 대하여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