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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Jun 17. 2023

2023.06.17 <루시드 드림>

글근육 키우기 09


꿈이 없는 삶이었다. 숨은 쉬고 있는데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입 안에 음식을 털어놓아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어도 즐겁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슬프다는 감정은 더더욱 사치였다. 신체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마치 일만 하는 기계 같았다.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갑에 있었다. 사회초년생이 되기 전부터 빚진 학자금 대출과 조금씩 메꿔 쓴 카드 할부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쫓기듯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삶을 살아가는 목표도, 원하는 꿈도 없이 오로지 빚에 쫓겨 달릴 뿐이었다. 선택해도 될까? 선택하게 되면 빚은? 그러나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갈구는 팀장과 제 업무를 넘기는 주임과 시시각각 나를 시기하는 직장동료 덕분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팀장의 얼굴에 사직서를 던졌다. 지금껏 모아온 돈과 퇴직금은 빚의 무게를 조금 줄여줄 뿐이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 굴레에서, 이 억압에서.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갈색 타일의 격자무늬 천장은 여태껏 본 적 없는 모양새였다. 이상하다. 여긴 어디지? 푹신한 매트가 등을 감쌌고 햇볕에 잘 말린 보드라운 이불이 몸을 에워쌌다. 집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윽.”


머리에 통증이 일었다. 지난밤에 술을 마시고 잤더니, 쓴 물이 올라왔다. 입 안이 쓰다. 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역하게 났다. 아무래도 거하게 취했었나 보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여름과 가을 중간 어디쯤의 바람 같았다. 나는 홀린 듯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베란다로 나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에메랄드빛 수영장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은 화창했고 햇볕은 따사로웠다. 곳곳에 야자수가 심어졌고 독특한 모양의 오두막이 시선 끝에 들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바닥을 보았다. 햇볕에 가열된 바닥 위로 발바닥이 닿았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아-. 이건 꿈이구나.’


다낭의 한 호텔 사진을 보고 잤던 게 꿈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꿈에서도 이렇게 황홀한데, 현실은 어떨까? 직접 보고 싶어졌다. 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 보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럼 이것부터 해보지 뭐. 직접 보러 가봐야겠다, 내 목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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