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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Jun 19. 2023

2023.06.19 <전깃불>

글근육 키우기 10


물에 젖어 신발이 질퍽했다. 소리를 내면 안 되는데, 평범한 도로가에 한적한 마을에서는 소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어디 젖은 신발에서만 소리가 나겠는가. 바지며 상의며 심지어 속옷까지, 움직일 적마다 살에 부딪쳐 철퍽한 소리가 났다. 물비린내는 또 어떻고, 어휴.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딱 제 짝이었다. 날도 어두워졌는데, 이대로 젖은 옷을 입고 있다간 추위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지금도 온몸에 닭살이 돋아 피부가 오돌토돌하지 않은가. 배라도 굶지 않았다면, 체력만 있었더라면 여름날 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제 처지를 한탄하던 리충복은 젖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강 수심이 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머리 위에 올려놓은 짐은 젖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곳 어디쯤 빈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전에 감시관의 눈에 띄면 안 되니 어둑한 곳으로 다녀야겠다. 나무가 우거져 어둠이 짙게 깔린 곳으로 몸을 숨겼다. 마침 중국인이, 타고 온 자전거를 전등 아래에 세워두고 있었다. 리충복은 멍하니 그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나무 아래에 꼿꼿하게 선 등불 걸이가 있었다. 마을 안에서 작은 축제를 열었던 모양이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등이 걸이에 걸려 환하게 빛을 내었다. 길게 늘어뜨린 술이 참 곱다. 이 늦은 시간까지도 전깃불이 들어오다니. 반평생을 살았던 동네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깃불… 여기는 불이 들어오네.”


리충복은 넋이 나간 눈으로 등불을 바라보았다. 등불은 집집마다 그리고 거리마다 어둠을 밝혔고,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에도 빛이 스멀스멀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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