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4 <나쁜 짓>
글근육 키우기 19
넓은 방 안에 옷가지들이 널브러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 귀티 나는 옷들은, 이름만 대도 알법한 유명 브랜드였다. 옷뿐만 아니라 몸값이 꽤 나갈 가방이며 액세서리도 바닥에 굴러다녔다. 레이스 실크 잠옷을 입고 너른 침대 위에 누운 엠마는 신음을 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무언가에 억눌리고 있는 듯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반짝 눈을 떴다. 그러고는 상체를 일으켜 세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뭐 이런 개같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1년째 머물고 있는 5성급 호텔은 지적할 구석 하나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덮은 이불도 볕에 잘 말려져 바스락거렸다. 손바닥에 감촉이 매끄러웠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색깔이 누랬었나? 지난밤은 어땠더라? 기억을 더듬다가 엠마는 미간을 좁혔다. 분명 꿈을 꿨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떠오르는 건 꿈에 대한 기분이었고, 그 기분은 지옥 바닥으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머리 좀 식히러 타국까지 왔건만 이 기분은 도대체 뭔지. 그러다가 침대 위에 올려놓은 누런 카드를 발견했다. 누런 봉투에 담은 누런 카드는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다.
“뭐야, 이건? [초록색이 기분 나쁘다고 그랬지? 그래서 내가 가져갔어. 이제 기분 상할 일은 없을 거야.] 초록… 뭐?”
순간 초록색이라는 말에 지난밤의 일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오는 클럽에서 동창을 만났다. 학창 시절에 따돌림을 받았던 그는 여전히 조금 독특한 차림을 했다. 위아래로 초록색을 깔 맞춘 정장. 불쑥 어린 시절이 떠올라, 신랄하게 꼽을 줬었는데.. 그런데 초록색을 가져갔다니? 그러고는 카드봉투를 뒤집으며 보았다. 누런색. 어딜 봐도 누런색이었다. 콧방귀를 뀌며 카드를 내동댕이쳤다. 당연히 엠마는 카드가 잘못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도대체 뭐야?!!”
그러나 카드의 뜻은 호텔 밖을 나오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엠마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걸으며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제 시야에서 초록색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도로가에 서 있는 사람과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있는 커플이 보였지만, 또렷이 보여야 할 초록색은 점점 누런색으로 변해갔다. 맞은편에 우뚝 솟은 나무도 누렇게 변했다. 엠마는 고개를 들어 횡단보도를 보았다. 초록색이어야 할 신호가 하얗게 반짝였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소재를 응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