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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Dec 13. 2022

일주일에 허락된 단 한번, 짜장라면.

아이가 자라나는 순간

난 귀엽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멋있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7년을 살아왔지만 초등학생이 된 올해 그녀를 만났다.

화려하게 꽃으로 장식된 카페에서 그녀를 소개받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온몸이 경직되고.

쉬지 않고 움직이던 입은 봉인이라도 당한 듯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처음 건낸말은 '안녕~ 네가 연송이구나! 너무 귀엽다~!!'라는 터무니없는 소리였음에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힘들었던 5일간에 스케줄이 끝나고 내가 좋아하는 토요일이 왔다.

초등학생이라는 타이틀에 무게는, 내 생각보다 버거운 것 투성이지만 이날만큼은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주말이 너무 좋다.


나 : 아빠 오늘 저녁은 짜장면 먹으면 안 돼?

아빠 : 이번 주에 짜장라면 안 먹었었나?

나 : 응. 그리고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먹어도 괜찮다고 했어.

아빠 : 그래. 오늘 저녁에는 연송이가 좋아하는 짜장라면 해줄게.


나는 짜장라면을 너무 좋아하지만 키가 커야 한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만 먹을 수 있는 제약이 생겼다.

엄마, 아빠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나에게만 너무 가혹한 듯싶다.


저녁이 되고 아빠가 요리를 하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아빠는 돼지고기와 양파를 깍둑썰기로 자른 뒤 파 기름을 내기 위해 파를 잘게 썬 후 한쪽에 두었다.

야채와 돼지고기를 잘 안 먹는 나를 위해 항상 다른 재료들을 넣고 짜장라면을 해주시는데,

솔직히 그냥 해주기를 바라지만 투정을 해봤자 '그럼 네가 해 먹어'라는 무서운 말만 돌아오기 때문에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올려놓은 냄비에  물이 끓기 시작하자 짜장라면 한 봉지를 뜯어, 면을 넣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 기름을 낸 뒤 잘게 썬 고기를 볶기 시작하였다.


이후 썰어 놓은 양파를 넣고 춘장 가루를 부운 뒤 앞뒤로 흔드는모습과 함께 맛있는 짜장 소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기 시작하였다. 이 향기는 언제 맡아도 좋은 것 같다.


냄비에 넣어둔 면이 풀 어질 정도가 되자, 면을 건져 짜장 소스에 넣으셨다. 이제 소스와 면이 합체하기만 하면 된다.

완성된 짜장라면이 앞에 놓이자 내 몸 안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먹고 싶었지만 뜨거운 김이 용오름처럼 피어 오르는 것을 보고 선뜻 젓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앞접시에 짜장라면을 덜어주었고.

그제야 안심하고 입으로 호호 불어 한입 먹을 수 있었다.


이 맛이다.

일주일의 기다림 끝에 마주한 짜장 소스는 우리에 재회를 반기기라도 하듯 내 혀를 짭짤함으로 감싸 안아 주었다. 이에 질세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으로 춤을 추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지만 아빠의 제지로 기쁨을 다 표현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이어나갔다.


나 : 엄마. 나 말해줄 거 있어.


엄마 : 응 들어줄 테니까 먹으면서 얘기해.


나 :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난 멋있는 게 아니고 귀여운 게 맞는 것 같아.


엄마 : 뭐?! 너 어제 예쁜 이모가 귀엽다고 말해줘서 그래? 어이가 없네...

너 다른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면 남자는 귀여운 거 아니고 멋있는 거라면서... 귀엽다는 말 하지 말라고 화냈잖아.


나 : 응 근데 난 멋있는 게 아니고 귀여운 게 맞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귀엽다고 해줘!


엄마 : 와... 진짜... 엄청 배신감 드네... 엄마가 귀엽다고 할 때도 화만 내더니... 참나...


내 단호한 결정에 엄마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아빠도 어이 없어하며 웃으셨다.

너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그녀가 찾아준 정체성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부모님을 통해 배우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워 나간다.

그렇게 하나하나 나를 채워가며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오늘 하루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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