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에는 인격권 측면에서 자기결정을 보장하는 독자적인 규정은 없지만, 자기결정권의 근거는 헌법 제10조 제1문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규정의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에 있다.
그럼에도 자기결정권은 여전히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AI 결정에 대응한 자기결정권을 구체화시키고, 그 보호의 실체인 ‘자기결정’의 내용을 밝혀야겠다. 자기결정권의 성격은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자기결정권은 자유권적 성격 자유권적 권리는 헌법에서는 ‘국가로부터(from∼)의 자유’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측면에서 자기결정권의 성격은 국가권력에 대한 방어적·소극적 권리이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는 능동적·적극적 권리의 성격도 있는데도 정보주체의 동의권에 의한 소극적 권리로만 취급된 경향이 있다)
둘째, 일반적 인격권적 성격 인격권의 핵심인 인격성의 정의에는 정신적·육체적 측면에서의 인격의 온전성, 정체성의 보호, 개성, 재산권적 측면에서의 요소가 포함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인격상에 관한 측면에서의 자기결정, 자유로운 인격의 형성으로 자기실현, 자기표현 측면에서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자기결정의 전제로서 ‘자유’와 ‘자기결정’의 개념
* 의사결정 주체의 ‘적극적 자유’의 보장
우리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에 근거한 자기결정권이 전제하는 자유의 개념은 자기결정의 개념적 표지일뿐, 자기결정권의 적극적 자유의 의미는 도출해야만 한다.
먼저 미국에서 개인의 자기결정에 관한 권리의 승인 배경을 살펴보자. 우리와 다른 법체계인 미국도 자기결정권에 대한 명문규정은 없다. 사적 영역에서(personal space) 자기결정과 비밀을 유지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으로 이해되며, 이 권리는 ‘프라이버시권’ 또는 ‘개인의 홀로 있을 권리’로 형성되었다. 미국의 프라이버시권은 네 가지 유형의 불법행위(four distant torts)로 접근되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침해행위를 전제로 하는 권리로서 처분성이 인정된 적극적 권리성이 고려된 자기결정권의 개념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1965년 Griswold v. Connecticut 사건에서 프라이버시권은 독립된 헌법상의 권리로 확립되었다. 이를 계기로 연방대법원은 프라이버시권을 판례를 통해 확립하면서 특히 선택과 통제에 대한 권리를 적극적 (자유) 측면의 프라이버시로부터 인정하였으며,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프라이버시에 근거해 보호해 왔다. 대표적으로ⅰ) Roe v. Wade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포괄적인 프라이버시권의 인정을 통해서 여성의 낙태에 관한 결정권을 인정하였고, ⅱ) Hardwick v. Bowers 사건을 시작으로, 1980년대에 와서는 피임·낙태에 관한 개인의 결정과 동성애적 행위 결정을 프라이버시권으로 인정하게 된다.(Lawrence v. Texas 사건) 아울러 ⅲ) 1977년 Whalen v. Roe 사건과 Nixon v. Administrator of General Services 사건에서는 공적 영역에서의 정보에 관한 자기결정의 문제를 프라이버시권으로 풀어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에 대응한 자기결정의 ‘자유’의 속성 내지는 내용은 어떻게 봐야할까?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Isaiah Berlin은 ‘자유에 관한 두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에서 자유의 개념을 외부의 간섭이 없는 ‘소극적 자유’와 자기지배를 중심으로 하는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고 있다. 자유의 개념을 이분화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이 인간을 객체화하고, 절대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게 되는 상황에서 자유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대신, “똑같이 절대적인 요청들 사이의 선택이 전제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적극적 자유’의 개념에서 AI 결정에 대응한 인간의 자기결정의 자율성이 전제하는 자유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Isaiah Berlin은 ‘소극적 자유’에 관해, ‘타인들의 간섭이 없는 상태’ 내지는 ‘타인으로부터의 방해가 없는 영역’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에 따르면 소극적 자유는 정의·인류의 행복· 안전·평등 그리고 문화의 가치를 위해서 제한될 수 있다. 소극적 자유는 인간 본성의 핵심이자 내적 자유 중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경계라고 할 것이어서 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으로서, 소위 ‘진정한 자유’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적극적 자유’는 자기지배(self-government)를 핵심요소로 한다. 이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기 인생을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자유이다. 적극적 자유는 인공지능 의사결정이 나의 인격성과 나와 관계된 일을 결정하는 것에 대척해, 인간 스스로 방향과 목표와 정책을 인식·실현하려는 욕구와 상당히 일치한다. Isaiah Berlin은 자기지배(self-mastery)라는 은유를 통해서, 적극적 자유를 개인이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는 지배적 자아가 타인과 사회의 가치와 상호작용하면서 사회화되고 진정한 자아 의제(impersonation)에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요컨대 소극적 자유는 ‘내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이고, 적극적 자유는 ‘내가 무엇을 향한 자유(freedom to)’라고 단순화시켜 구분할 수 있다. 이에 소극적 자유가 침해를 허용하지 않는,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자유라면, 적극적 자유는 사회의 가치들로부터 조정된 최대한의 자유라고 이해할 수 있다.
두 자유의 개념은 자기결정권이 근간하는 헌법 제10조의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으로부터도 근거된다. 소극적 자유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과(행복추구권에는 인간이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지지하는 자유가 포함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일반적 행동자유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의 소극적 자유를 언급하는 판례들로부터 지지되어 왔다. 적극적 자유는 헌법 제10조의 인간 존엄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적극적 자유는 인간이 자기입법과 합리적인 자기계산으로 결정하는 자유라고 할 것이며, 적극적 자유를 통한 자기표현과 자기실현은 인간 존엄으로 나아가는 자기결정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자유와 자유의 대립 구도에서 자기결정 요소로서 ‘적극적 자유’의 의미
인공지능의 의사결정과 인간의 자기결정은 자유와 자유의 대립 구도를 띤다. Isaiah Berlin의 자유의 두 개념으로 자기결정권에서 자유의 개념과 영역을 조망하는 이유는 자기결정권에서 자유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자유의 중요성을 기준으로 제한의 한계 기준을 가늠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에 대응한 자기결정권이 전제한 자유의 개념적 표지를 Isaiah Berlin의 적극적 자유의 개념에서 가져온다면 인간의 자기결정의 보호에 유리하다. 이 경우 실체적 권리와 적극적인 청구권적 권리로 접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적극적 자유의 자기지배(self-government)의 개념은 최종적 의사결정에 대한 내용으로 합리적 자기결정의 자율성 침해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자기결정의 전제조건의 보호 -‘선택’과 ‘통제’
자기결정권은 자신의 스스로 자기의 행위를 지배하는 규칙(rule)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자유에 권리성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결정권의 핵심은 ‘자기결정’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헌법 제10조에서 보장되는 일반적인 인격권, 인간 존엄, 행복추구권은 인간이 자기답게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여기서 자기결정은 스스로 외부의 무엇을 향해서(to) ‘선택’ 할 수 있고, 간섭하는 무엇으로부터(from)의 ‘통제’ 가능한 권리이어야 한다. 정보의 홍수에서 알고리즘은 선별된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추천·제공되는 편향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처리는 개인의 자기결정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선택지는 인간의 자기결정의 결과물은 아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이 인간 스스로의 사실인식과 가치판단이 내재된 결정과 동떨어진 것으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인위적 개입이 될 때, 개인의 자기결정을 위협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은 개인이 인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공지능 환경에서 ‘자기결정’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국가는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으로 인한 위험에 대응해 개인인 국민이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서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자기결정의 전제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때 국가의 개인에 대한 자기결정권 보호의무는 개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외부적 요인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지에 ‘선택’과 ‘통제’의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이 자유로운 인격적 발현의 종국인 ‘자기결정’에 나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데 있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믿는다
참고문헌
Isaiah Berlin, Four Essays on Liberty, Oxford University Press(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