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숲속 저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타인의 허물과 용서

여름날 일상, 니느웨 사람들

매해 이맘때 선교회 수양회를 간다. 국민 휴가철이라 이 일정을 소화하능 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이 때문에 여름휴가라는 것이 내게 없게 됐다.

자타공인 뮤지컬 감독님 정아언니가 컴백했기에  올마지막 밤에 공연은 엄청난 화려함을 자랑했다. 담백하고 검소하기 그지없는 우리 교회에서 이 정도 의상과 음향은 다소 부담스러울 법한데, 저녁 일정이 부담스럽던 나는 이것을 잘 즐겼다. 뮤지컬은 구약성경의 <요나서> 이야기였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요나 1:1~2)

우리는 악인의 멸망, 그에 대한 심판을 기대한다. 드디어 신이 정의를 세우길, 악인을 심판하려 움직이신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하시다. 그 악독이 나를 분노케 하였다하시면서, 싹다 멸말시킬테니 (?) 용서를 구하라고 , 나에게 굳이 원수에 기회주는 일을 맡기신다.
하나님의 명령이 요나에게 이르렀고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성읍이 40일 후 멸망하니 회개하라 외친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 3:4)

그런데 그 중간에 요나가 하나님의 명에 고분고분했던 게 아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 민족에 원수였고, 우상과 죄가 팽배한 부패한 도시였다. 요나는 도망쳤다. 하나님의 눈을 피해서! 아마 핑곗거리가 될 게 필요했나 보다.

요나는 욥바 항구를 통해 지중해 서쪽 끝, 스페인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몰래 탔으나,  풍랑을 만난다. 선원들은 금세 이 모든 원인에 요나가 하나님의 원을 산 것을 알고 제물로 바다에 요나를 던진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있다가 바닷가에 토해진다.(피노키오에도 이런 장면이 있지!)

하나님의 납득이 안되는 명령에 멀리 도망한 요나의 마음을, 나는 이해핳 수 있다. 나도 도망가려고 몇 번 시도했지 매번 다시 끌려온 느낌이다.

그러고 나서 적국인 니느웨 사람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이 그런 악인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에 분해하며 돌아오는 길 박넝쿨 아래 졸다가, 잠이 깨어 일어나 박넝쿨이 상한 것을 알고 하나님께 따지게 된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9~11)


세상에는 죄를 짓지만 회개할 것 같은 사람이 있고 끝끝내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다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나와 같은 죄인이고 후자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도마와 같이 그냥 태어나지 않은 게 나았을 사람이다. 아주 넘어지지 않았을 뿐 흔들거리던 나도 니느웨와 같이 자격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해주신다.

사랑하기 힘들 때가 너무나 많다. 가끔은 원수보다 내 편일 것 같은 내 편이지 않은 그들이 더 용납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 분의 메시지는 사랑을 배우라는 것이다. 내 영역 밖에 사함들에게도.

무더위가 한 풀 꺽인 것일까.

내게 없는 관용과 사랑을 배우는 데 진일보한 여름날이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