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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Oct 02. 2024

할슈타트-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을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어제 못지않게 먼 길을 달려가야 한다. 이번 목적지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인 할슈타트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이른 아침에는 제법 많이 쏟아진다. 할슈타트에도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한참이나 달린 승합차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른다. 이곳에서 잠시 화장실에 가든지 커피라도 한 잔 마시든지 할 참이다. 한적한 휴게소여서 그런지 우리나라 휴게소보다 조용하고 깔끔하다. 


휴게소에서 다시 출발한 승합차 창밖으로 ‘바트이슐’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오스트리아 제국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혔던 황후 엘리자베트, 즉 시씨가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처음 만나 청혼을 받았던 곳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바트이슐에 있는 카이저빌라에 가서 황후 엘리자베트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번 여행 일정에는 들어있지 않다. 


할슈타트는 할슈타트 제(할슈타트 호수)에 붙은 작은 마을이다. 상주인구는 1천 명에도 못 미친다고 하니 정말 작은 마을이 아닐 수 없다. 할슈타트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높은 산으로 막힌 데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오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유일한 교통수단은 호수의 배뿐이었다. 



할슈타트는 기원전부터 시작된 소금 생산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할슈타트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꽃바구니가 창가를 장식하는 봄이나 여름이다. 하지만 이때는 엄청난 규모의 관광객이 몰려 실제로 움직이기조차 힘들다. 풍광도 좋고 돌아다니기도 좋은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봄, 여름만큼 관광객이 많지 않다. 


겨울 할슈타트 풍경을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날씨가 매우 추운 데다 얼어붙은 호수 풍광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사람도 있고, 영화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된 곳이어서 눈이 오면 정말 황홀하다는 사람도 있다. 2025년 1월 말 할슈타트에 다시 가기로 했으니 그때 확인해보면 되겠다.


버스는 할슈타트 문화센터 겸 공회당 앞 주차장에 일행을 내려준다.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데 주차장은 좁기 때문에 차를 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원한 호수 풍경과 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비는 거의 그쳤지만 우려했던 대로 안개가 끼어 호수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봐야 좋은 그림이 나올 리 만무하다. 어찌 됐든 먼저 공회당 왼쪽 제 슈트라세 거리로 방향을 잡는다. 


할슈타트는 호수를 마주보고 있다. 목재로 만든 대부분 건물은 호수 맞은편 산어귀에 붙었다. 마치 부산의 동구와 서구에 산동네가 형성된 것과 같은 이치다. 할슈타트는 푸른 산을 등 뒤에 두고 맑은 호수를 눈앞에 둔 그야말로 배산임수 지형이다. 너른 바다를 바라보는 부산의 산동네도 푸른 숲으로 덮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아름답고 환상적인 경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가 내리는데도 할슈타트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우산을 쓴 사람이 많아 걷기조차 힘들다. 그래도 짜증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에서 짜증을 낸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던가!



18~19세기 모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할슈타트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을”이라고 했다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 말이 옳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선착장 인근에 거위 배가 서 있다. 배 옆에는 오리 여러 마리가 돌아다닌다. 옆 선착장에는 작은 보트가 서 있다. 호수 한가운데로는 유람선이 다닌다. 날이 맑으면,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유람선이나 작은 보트를 타고 할슈타트 제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할슈타트 중심지는 중앙 광장인 마켓플라츠다. 이곳에서 식사를 즐길 수도 있고 산 어귀에 붙은 집 사이로 올라가볼 수도 있다. 일단 산으로 올라가 성모승천교회에서 전망을 보기로 한다.



아래에서 볼 때에는 경사지에 집이 서 있어 지나갈 골목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자 집 사이로 생각하지도 못한 골목이나 계단 같은 게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덕분에 교회로 가는 길은 물론 주변 길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길 사이로 올라가자 길 건너편에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아주 웅장한 폭포는 아니지만 마을 인근에서 흐르는 폭포라서 꽤 인상적이다.


골목길에서 나타난 집은 대부분 목재 주택이다. 나무는 금세 썩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관리를 잘 하면 100년 이상 간다고 한다. 


골목 계단을 걸어 올라가다 힘들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아래쪽 집에서 난방을 하는 것인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 너머로 할슈타트 제가 머리를 약간 내밀고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조금 더 올라가지 옆으로 가지런히 난 목재 데크가 나타난다. 데크를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서서히 걷혀가는 안개 사이에서 푸른 하늘과 맑은 호수가 나타난다. 교회에 다녀온 뒤 아래로 내려가면 깔끔한 호수 전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루터복음교회다. 큰 교회는 아니지만 미색 건물 벽과 짙은 갈색 지붕 그리고 뾰족하게 솟은 종탑이 호수를 배경으로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준다.


돌고 돈 끝에 마침내 성모승천교회에 도착했다. 이 교회도 아래의 루터복음교회처럼 아담하지만 산중턱이라는 좋은 자리 덕분에 전망이 매우 뛰어나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한눈에 할슈타트 시내는 물론 할슈타트 제까지 다 볼 수 있다. 게다가 마을의 끝부분이어서 한쪽 끝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측면 풍경을 볼 수 있어 다른 곳과는 다른 전망을 제시한다.



성모승천교회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마을의 반대편으로 가 보기로 한다. 대부분 관광객은 지역 주민이 사는 곳이어서 가면 안 된다고 착각해서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다. 처음에 버스에서 내린 주차장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다닌 길과 반대쪽 길로만 가면 된다. 


이곳 분위기는 중앙 광장으로 가는 길과는 완전히 다르다.  유모차를 몰고 다니거나 개를 끌고 혼자 산책하는 지역 주민을 제외하면 외국인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택 사이에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좁은 도로뿐이어서 길을 잃을 걱정도 없다.


마을 골목길 끝까지 5분 정도 걸으면 호수 쪽에 작은 섬이 하나 나타난다. 이 섬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이 많이 찾는다. 섬으로 가는 사이 짙은 안개는 거의 다 걷혀 호수의 시원한 모습이 나타난다. 구글맵에도 ‘할슈타트 제의 파노라마 전망’이라고 적힌 걸 보면 아는 사람에게는 꽤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섬 앞에는 ‘현악기기술학교’가 있다. 어린이 놀이터를 중심으로 작은 공원도 있어 어린이를 대동한 지역 주민이 편히 쉰다.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공원이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보인다.


섬을 뒤로 하고 산을 바라보니 케이블카가 정상을 오르내린다. 산 아래와 소금광산을 오가는 잘츠부르거반 할슈타트다. 이곳이 잘츠부르크 주의 마을이다 보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상에는 소금광산 외에 박물관이 있다고 하는데 시간 관계상 이곳에 그냥 지나친다.


특이하게도 섬으로 가려면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폭이 좁아 둘이 건너기도 쉽지 않다. 한 사람이 건너오면 기다렸다가 건너야 한다. 



섬은 매우 독특하다. 섬과 육지 사이 물길은 매우 좁다. 원래 육지에 붙은 걸 떼어내 섬으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좁은 간격을 두고 떨어졌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좁은 물길에서는 오리인지, 백조인지가 돌아다닌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사람 손을 많이 탄 모양이다. 


섬에서는 호수는 물론 할슈타트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이곳에서 가장 풍경이 뛰어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섬 주변에는 작은 벤치가 여러 개 놓였다. 잠시 앉아서 쉬고 가라고 설치한 모양이다. 그 뜻에 부흥하도록 벤치에 잠시 앉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글자 그대로 ‘멍 때리기’에 들어간다.



섬은 물론 주변이 정말 조용한 데다 풍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 일부러 멍을 때리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멍 때리기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경치는 빼어난 데다 공기까지 맑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여기처럼 아름다운 풍광은 본 기억이 없다.


다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섬 곳곳에는 많지는 않지만 20여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돌아다닌다.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 여성도 보이고, 벤치에 나란히 앉자 호수만 바라보는 가족도 있다. 휴대폰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셀카로 함께 사진을 찍는 연인도 있다.



벤치에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10월 말인데도 바람이 차지 않고 선선해 춥다는 느낌도 없다. 호수 한쪽에서 유람선이 나타나더니 물살을 가르면 반대쪽으로 달린다. 날씨가 맑다면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은 한참이나 흘렀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다. 여행사 사장이 정해준 데드라인이 코앞이다. 이대로 여기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버리고 엉덩이를 힘겹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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