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일정은 딱 하루여서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 이전 여행 경험에 비춰볼 때 이곳도 제대로 돌아보려면 2~3일은 머물러야 한다. 직접 돌아다녀도 되고 현지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 같은 것에 참여해도 된다. 우리나라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상품 중에 잘츠부르크를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둘러보는 것은 없다.
일단 ‘사운드 오브 뮤직’의 현장인 미라벨정원을 거쳐 잘츠부르크대성당, 레지덴츠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가기로 했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잘츠부르크를 세계적 관광지로 만든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미라벨정원에는 미라벨궁전이 있다. 순서를 따지자면 미라벨궁전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정원이 만들어졌다. 미라벨궁전을 처음 만든 사람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잘츠부르크 대주교 겸 대공이었던 볼프 디트리히 라이테나우였다. 결혼을 할 수 없는 사제 신분이었던 그는 1592년 시의원의 딸이었던 살로메 알트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 열다섯 명을 낳기도 했다. 볼프 디트리히는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지자 살로메가 편히 지낼 수 있게 하려고 잘자크강 인근에 미라벨궁전을 지었다.
볼프 디트리히가 건설한 궁전의 원래 이름은 ‘살로메 알트의 집’이라는 뜻인 알테나우궁전이었다. 후임 대주교 마르쿠스 시티쿠스는 궁전의 이름을 미라벨로 바꾸었다. 미라벨이라는 이름의 뜻과 관련해서 두 가지 가설이 전한다. 먼저 미라벨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뜻인 이탈리아어 ‘미라빌리’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자두나무 미라벨이 어원이라는 주장이다. 알테나우궁전 근처에는 미라벨 나무가 많았다.
마르쿠스 시티쿠스의 후임 대주교였던 파리스 폰 로드론은 미라벨궁전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궁전을 더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정원을 확장했다. 궁전의 별채도 새로 지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미라벨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때 완성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라벨궁전과 정원에는 모차르트의 이야기도 숨어 있다. 모차르트가 다섯 살에 음악의 신동이라고 소문이 나자 당시 대주교 슈라텐바흐가 그를 미라벨궁전으로 불렀다. 모차르트는 궁전에 있는 대리석의 홀에서 음악을 연주해 대주교를 매혹했다. 그 덕분에 그는 대주교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대음악가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지금 미라벨궁전은 화려하거나 웅장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1818년 4월 30일 궁전 인근인 드라이팔티그카이츠가세에서 발생한 대화재 때문이었다. 나흘간 이어진 화재 탓에 미라벨궁전은 큰 피해를 입었다. 많은 방과 홀이 불타버렸다. 벽과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벽화와 장식은 재로 사라져버렸다. 모차르트가 연주회를 열었던 ‘대리석의 홀’과 ‘대리석의 계단’ 등 일부만 살아남았다.
미라벨정원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 영웅을 묘사한 조각상이 즐비하다. 파리스 폰 로드론이 죽고 30여 년 뒤 대주교가 된 요한 에른스트가 새로 만든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대분수의 4대 석상이다. 헬레나를 납치하는 파리스, 안키세스를 구하는 아이네아스, 안타이우스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가 조각상의 주인공이다. 이밖에도 유피테르, 아폴로, 메르쿠르, 불카누스, 마르스, 바쿠스, 사투르누스, 디아나, 베누스, 미네르바, 유노 등 여러 신의 조각상이 설치됐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난쟁이정원’도 인상적이다. 요한 에른스트가 난쟁이였던 신하 마이헬뵉의 충성심을 치하하는 뜻에서 정원을 만들었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 궁정에는 난쟁이가 살면서 왕을 즐겁게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에는 ‘살구를 든 난쟁이’ ‘삽을 든 난쟁이’ ‘무 바구니를 옮기는 난쟁이’ 등 조각상 28개가 설치됐다.
미라벨정원은 모차르트가 일요일에 산책을 자주 즐기던 곳이었다. 그는 일요일이 되면 잘츠부르크대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미사를 마친 뒤에는 집에서 가족, 그리고 친구를 모아 볼츨쉬센이라는 오락을 즐겼다. 이후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미라벨정원을 산책했다.
미라벨정원은 연중 어느 때 가더라도 아름답다. 그래도 가장 훌륭한 풍광을 눈에 담아보려면 봄이나 초여름에 가는 게 최고다. 정원에 피어난 다양한 색의 꽃과 푸르른 잎은 세상을 환상적으로 만든다. 가장 풍광이 뛰어난 포인트는 정원의 가장 높은 곳, 즉 미라벨궁전 바로 앞이다. 여기에서는 정원은 물론 멀리 호엔잘츠부르크성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많은 눈이 내린 겨울 이른 아침에 아무도 눈을 밟은 흔적이 없을 때 정원을 둘러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눈에 덮인 화초와 조각을 둘러보노라면 세상이 마치 흑백사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숲과 조각 사이에서 친구들과 짓궂은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는 모차르트가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미라벨정원에서 마르코 파인골트 다리를 건넌다. 잘자크강에는 유람선이 한가롭게 돌아다닌다. 강변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도 마련돼 자전거 동호인이 신나게 속도를 즐긴다. 사람이 전용 도로에서 얼쩡거리면 비키라는 호통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다리를 건너 게트라이데가세로 들어간다. 어젯밤 사지 못한 퓌르스트의 모차르트 쿠겔을 구매할 작정이다. 게트리아데가세 끝부분 천주교 성당 앞에 있는 분점에서 초콜릿 여러 종류를 고른다.
퓌르스트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그야말로 모차르트거리가 나타난다. 거리의 실제 이름은 뷔르거슈피탈가세이지만 이 거리를 모차르트거리라고 불러도 지나치지는 않다. 모차르트를 핵심으로 하는 잘츠부르크음악축제 공연장과 모차르트 회관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 모차르트가 다섯 살 때 학예회에 무용수로 출연했고, 열두 살 때 자작 오페라 ‘아폴로와 히아킨투스’를 초연한 잘츠부르크대학교 대강당이 이곳에 있다.
대강당은 2001년 미국 기업인 도널드 칸 부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수리 작업을 거쳐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던 2006년 재개장했다. 재개장 기념 연주회 선정 곡은 ‘아폴로와 히아킨투스’였다.
해마다 여름철 잘츠부르크음악축제가 열리면 이 거리는 물론 잘츠부르크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미리 축제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잡아 표를 예매하지 않는다면 각종 공연장에 들어갈 입장권 한 장 구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은 공연 시즌이 아니어서 음악축제 공연장이나 대강당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 거리를 한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잘츠부르크의 큰 식당이나 미라벨정원 인근에 있는 모차르테움, 레지덴츠 등에서 주말은 물론 수시로 모차르트 음악 연주회가 열린다. 인터넷에서 입장권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대성당에서도 가끔 모차르트 연주회가 열린다. 운이 좋으면 대성당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 셈이다.
거리 끝에 있는 장크트페터수도원에서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 있다. 1천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슈티프츠쿨리나리움 장크트 페터(슈티프츠켈러 장크트 페터)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도 이곳에서 가끔 식사를 했다. 때로는 가족과 함께, 때로는 지인과 함께 식당을 방문했다. 난네를이 1783년 10월에 쓴 일기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는 슈티프츠켈러에서 친구와 점심을 들었다. 폭우가 내렸다.’
슈티프츠켈러에서는 매일 저녁에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가 진행된다. 음식을 즐기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식사는 연주회 중간 휴식기에 제공된다.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은 직원이 다양한 음식을 대접한다. 잘츠부르크에서 하룻밤을 묵어간다면 호텔 로비의 직원에게 부탁해 예약을 하면 된다.
장크트페터수도원도 모차르트와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모차르트는 신부가 된 동네 형의 첫 미사를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도미니쿠스 미사곡 K66’을 이 수도원에서 초연했다. 또 빈에서 살다 잘츠부르크에 잠시 들렀을 때 ‘대미사곡 C단조’를 이곳에서 초연했다. 게다가 그의 누나 난네를은 이 수도원 공동묘지에 묻혔다.
공동묘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도 등장한다. 합창대회를 마친 트랩 가족은 잘츠부르크에서 탈출한다. 그들은 나치에 쫓길 때 공동묘지를 통해 달아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사람이라면 어느 장면인지 금세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