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엔잘츠부르크성에 올라가려면 잘츠부르크대성당 뒤편에 있는 카피텔플라츠, 즉 카피텔광장을 지나 푸니쿨라 탑승장으로 가야 한다. 카피텔광장은 인근 카피텔가세 거리에 있던 잘츠부르크대성당 사제단 숙소, 카피텔하우스에서 이름을 딴 광장이다. 사제단을 영어로는 챕터(chapter), 독일어로는 카피텔(kapitel)이라고 부른다.
광장 한쪽 모퉁이에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넵투누스(포세이돈) 동상이 선 분수가 있는데, 카피텔가세는 분수 왼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17세기에 잘츠부르크의 지도자였던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 대주교 겸 대공이 건설해 성당 참사회 소속 사제 숙소로 이용했다. 19세기에 프랑스군이 잘츠부르크를 침공했을 때에는 프랑스군 막사로 활용됐다. 1990년부터는 잘츠부르크대학교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카피텔가세와 그 일대 골목은 중세에 잘츠부르크의 귀족이 살았던 주택가였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2007년과 2014년 잘츠부르크에 갔을 때 묵었던 숙소가 카피텔가세 끝부분에서 카이가세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나타나는 알슈타트호텔 카제레브라우였다.
아주 낡은 호텔이었지만 놀랍게도 잘츠부르크 문화유적 보호건물이었다. 1305년에 고딕식으로 처음 지은 건물이었다니 역사가 무려 700년을 넘는 셈이다. 카제레브라우를 지을 때만 해도 주변에 다른 건물은 드물었다. 처음에는 수도원이었다가 나중에는 순례를 떠나는 신도와 사제를 위한 여관 역할을 했다. 카제레브라우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1775년이었다.
1905년 잘츠부르크에 모차르트키노라는 극장이 문을 열었는데, 극장 소재지가 바로 카제레브라우였다. 1955년 개봉한 영화 ‘시씨’가 이곳에서 초연됐다고 한다. 상영관이 두 개인 극장은 지금도 운영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카제레브라우 호텔이 있는 카이가세를 따라 쭉 가다보면 유명한 논베르크수녀원이 나온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자 주인공 마리아가 수녀 견습생 생활을 한 곳이 바로 여기다. 잘츠부르크에서 하루 이틀 묵어간다면 이곳에 들어가서 묵거나 수녀원 인근 한적한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바쁜 여행객이라면 이곳에 들를 생각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다시 발걸음을 카피텔광장으로 돌린다. 얕은 오르막길인 페스퉁가세를 따라 올라간다. 푸니쿨라 승차장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다. 광장에서 걸어서 2~3분 거리다. 푸니쿨라 정식 명칭은 페스퉁반이다. 1892년 개통될 때만 해도 수력으로 운영되던 전차였다. 1960년대 들어 전기 전차로 교체됐다. 1991년과 2011년에는 현대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페스퉁반은 우리나라 여러 관광지의 케이블카와 비슷하게 운영된다. 승차장에서 한 칸짜리 객차에 오르면 성까지 금세 올라간다. 승차장에서 성까지 길이는 191m에 불과하다. 철로는 생각보다 가파르다. 하지만 스릴이 넘치거나 짜릿한 느낌은 주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매우 느리게 운행되기 때문이다.
호엔잘츠부르크성에는 페스퉁반 외에 푸니쿨라가 한 대 더 있다. 사설 푸니쿨라인 라이스주크다. 관광객은 이용할 수 없고 성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만 사용하는 시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이스주크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라는 사실이다. 1504년에 만들었으니 올해로 500년이 넘었다. 엄청난 연륜을 자랑하지만 큰 고장 없이 지금도 튼튼하게 성을 오르내린다.
많은 관광객이 호엔잘츠부르크성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 성에서는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시내 쪽만 아니라 너른 초원이 펼쳐진 시 외곽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성 내부에는 2~3시간 정도 둘러봐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아 꽤 재미있는 관광지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의 독일어 이름은 페스퉁 호엔잘츠부르크다. 그래서 푸니쿨라 이름도 페스퉁반이 됐다. 독일어로 부르크는 ‘성’이라는 뜻인데 페스퉁은 ‘요새’를 의미한다. 호엔은 ‘높다’는 뜻이니 페스퉁 호엔잘츠부르크는 ‘잘츠부르크 고지대의 요새’로 번역할 수 있다. 성이 있는 높은 바위 언덕의 이름은 페스퉁스베르크다. 글자 그대로 ‘요새의 산’이다. 페스퉁스베르크 오른쪽에도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의 이름은 논베르크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논베르크수녀원이 세워진 언덕은 바로 이곳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잘츠부르크에는 켈트족, 즉 갈리아족이 살았다. 그들은 낮에는 평지에 내려가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았다. 밤에는 높은 언덕, 즉 페스퉁스베르크에 올라가 지냈다. 북부 지역에서 사는 게르만족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팍스 로마나 덕분에 전쟁이 줄어들자 갈리아족은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언덕에 올라가 살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언덕에서 내려와 잘자크강 양쪽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것이 오늘날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의 기원이었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은 무려 1천 년 전인 1077년에 만들어졌다. 성을 처음 지은 사람은 당시 대주교 게브하르트 폰 헬펜슈타인이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세속 권력을 놓고 다퉜는데, 헬펜슈타인은 교황을 지지했다. 하인리히 4세가 군대를 이끌고 잘츠부르크에 쳐들어올 우려가 커 그는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만든 게 호엔잘츠부르크성이었다.
처음에 만든 것은 잠시 몸을 피할 수 있는 단순한 요새였다. 처음에는 작은 성채에 불과했지만 점점 커져 나중에는 웅장한 성으로 발전했다. 성은 깎아지른 것처럼 험준한 바위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해발 506m의 페스퉁베르크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성안에서 버티고 있으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함부로 쳐들어올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의 역대 대공-대주교가 호엔잘츠부르크성을 여러 차례 보강하는 데 사용한 자금은 대부분 뒤렌베르크의 소금 광산과 타우에른의 탄광에서 나온 수입으로 충당했다. 16세기 중반에 금광이 절정기일 때 해마다 캐낸 금 생산량은 831kg에 이를 정도였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연평균 100만 명이다. 빈의 쇤브룬궁전을 제외하고는 오스트리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관광지다. 대주교가 목숨을 건지려고 만든 성이 오늘날에는 모차르트와 함께 잘츠부르크를 먹여 살리는 소중한 자산이 된 셈이다.
호엔잘츠부르크성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공기로 작동되는 오르간, 즉 오르골인 혼베르크다. 1502년에 처음 만들어졌으니 벌써 500년이라는 나이를 가진 시설이다. 당시 대공-대주교였던 레온하르트 폰 코이차가 주민에게 새벽 4시 기상 시간과 저녁 7시 취침 시간을 알려주려고 혼베르크를 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야외에 설치한 혼베르크는 금속 파이프 135개, 그리고 바람상자와 풀무가 달린 통나무 모양의 대형 오르골이었다. 풀무가 움직이면 파이프 135개는 아우구스틴 에블러가 작곡한 합창곡을 연주했다.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소리가 커서 사람들은 이 오르골을 ‘뿔’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더 나아가 ‘잘츠부르크의 황소’라는 별명을 붙였다.
잘츠부르크의 황소는 도시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악기였다. 잘츠부르크 어디에서나 아침과 저녁이면 혼베르크의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음악은 당시 지배자였던 대공-대주교의 세속적, 종교적 권력을 상징했다.
중세에는 호엔잘츠부르크의 혼베르크 외에 유럽의 수많은 마을, 수도원, 성당에 각종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오르골이 만들어졌다. 지금 대부분은 모두 사라졌거나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손상됐다. 유독 잘츠부르크의 호엔잘츠부르크성에 있는 오르골만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잘츠부르크의 황소’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오르골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의 혼베르크는 지금은 크란투름의 발코니에 설치돼 있다. 외부에서는 볼 수 없고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성 내부를 둘러볼 때 지나가면서 볼 수 있다. 혼베르크는 해마다 부활절 직전의 일요일인 종려 주일부터 10월 31일까지 작동한다. 이 기간 중에는 매일 오전 7시, 11시와 오후 6시에 음악을 연주한다. 특정 기념일이 되면 가끔 특별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아쉽게도 과거처럼 잘츠부르크 시내에서는 혼베르크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자동차 등 온갖 소음이 도시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페스퉁반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사가 그다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걷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작은 성문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올라다가 뒤를 돌아보면 잘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멋진 풍경이다. 모든 관광객은 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곳에서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추억의 사진을 하나씩 남긴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은 가이드 없이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고문실, 혼베르크, 성가퀴 같은 특별한 구역을 구경하려면 돈을 추가로 내고 가이드 투어를 이용해야 한다. 옛 제빵실인 피스테레이, 와인 창고 같은 폐쇄 구역에 들어가려면 일반 가이드 투어보다 더 비싼 특별 가이드 투어를 이용해야 한다.
성에서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은 마리오네트박물관이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제법 다양한 마리오네트 인형을 갖췄다.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대의 무기, 장비를 전시한 왕립 보병연대 전시실과 요새 박물관이 뒤를 잇는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어서 재미는 있어도 엄청난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성 한가운데에는 너른 정원이 보인다. 밝은 햇빛이 내리비치는 정원 가운데에는 아주 너그러워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옆에는 작은 교회가 나타난다. 지금도 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이다. 일요일 등 수시로 교회 행사가 펼쳐진다.
이곳에 왔으니 혼베르크를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교회 맞은편 건물로 들어가면 가이드 투어 표를 살 수 있다. 사람이 적당히 모이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가이드가 나타나 모든 참가자에게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준다.
여러 방을 돌아다니며 성과 방의 역사, 전설을 이야기해준다. 때로는 성벽으로 올라가 성 주변을 둘러볼 기회도 준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혼베르크다. 각 방을 지나가는 사이에 혼베르크가 한쪽에 나타난다. 마치 방직기계처럼 생긴 혼베르크는 유리로 닫힌 방 안에서 얌전히 연주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
잘츠부르크 여행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 살 때 단골로 드나들었던 구시가지 중심가 알터 마르크트에 있는 카페 토마셀리다.
1703년 카페가 문을 열 때 이름은 카페 폰타인이었고, 모차르트가 드나들 때 이름은 카페 슈타이거였다. 모차르트가 이곳에 가면 늘 마시던 음료가 있다. 바로 아몬드 밀크였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아몬드 밀크를 판다.
카페 토마셀리에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가구, 크리스탈 샹들리에 그리고 하얀 앞치마를 입은 직원,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디저트를 운반하는 카트, 나무 가판대에 놓인 신문 등은 100여 년 전 중상류층 인사들이 즐기던 우아한 분위기 그대로다.
가끔 관광객이 너무 많이 입장해 소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우아한 분위기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조용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오전이다. 매일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이곳을 일찌감치 찾아오는 단골 고객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침 신문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좋은 하루는 토마셀리에서 즐기는 조식으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한 가지 더! 카페 토마셀리 건물 한쪽 모퉁이에는 ‘콘스탄체 모차르트 하우스’라는 동판이 붙었다. 흥미롭게도 모차르트의 부인이었던 콘스탄체는 남편을 잃고 재혼한 뒤 새 남편과 함께 잘츠부르크로 이사를 가 카페 토마셀리 건물 한쪽에 방을 얻어 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재혼했으면서도 왜 전 남편의 추억이 서린 잘츠부르크로 이사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