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8세 국왕은 1195년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해 레콩키스타, 즉 실지회복운동에 나섰지만 알라르코스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에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1211년에는 아프리카에서 무하마드 알 나시르가 이끄는 지원군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했다. 레콩키스타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겨우 명맥을 유지해온 카스티야 왕국조차 붕괴할 위기에 몰렸다.
알폰소 8세는 분위기를 반전하고 레콩키스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 번 더 이슬람 군대와 일전을 벌이기로 했다. 그는 지원군이 필요하다고 보고 교황 이노첸시오 3세에게 ‘십자군’을 편성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 군대의 대패에 깜짝 놀란 터였다. 자칫하다가는 이슬람이 다시 피레네산맥을 넘어 유럽을 침공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컸다. 그는 사태 악화를 조기에 막기 위해 유럽 다른 여러 나라에 스페인을 도와줄 십자군을 파병하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교황의 요청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의 반대가 심했다. 이들이 트집을 잡은 것은 알폰소 8세가 유대교, 이슬람교를 모두 포용하는 정책인 ‘라 콘비벤시아’를 펼친다는 사실이었다.
난관에 봉착한 알폰소 8세는 혼자서라도 어려움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치 지역이나 마찬가지이던 마드리드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슬람과의 전투에 병사를 보내주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꼭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마드리드 시의회는 격론 끝에 알폰소 8세를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대규모 기병을 파견했는데, 다른 기독교 군대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독특한 문양의 깃발을 달고 다녔다. 은색으로 빛나는 들판에 네 발로 선 곰이 그려진 깃발이었다. 마드리드의 문장에 곰이 최초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알폰소 8세는 마드리드 외에도 경쟁 국가였던 나바르 왕국의 산초 7세, 아라곤 왕국의 피터 2세, 포르투갈의 아퐁수 2세의 도움도 받았다.
이베리아반도의 운명을 건 기독교 군대와 이슬람 군대의 전투는 1212년 7월 16일 이슬람의 중심지이던 그라나다 북쪽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에서 벌어졌다. 유럽 역사학자들은 이 전투를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라고 부른다. 이슬람에서는 ‘알-우카브 전투’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전투는 레콩키스타에 분수령이 됐다고 할 만큼 결정적인 승리를 기독교 군대에 안겨주었다.
알폰소 8세는 이슬람이 점령한 산맥을 넘어 페스페나페로스 협곡을 지났다. 처음에는 이슬람 군대 뒤로 숨어드는 지름길을 몰라 애를 태웠는데,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양치기가 알폰소 8세를 찾아가 길 안내를 자청했다. 마치 그리스로 쳐들어간 페르시아 군대가 테르모필라이에서 스파르타 전사 300명에 가로막혀 곤욕을 치르다 그리스 배신자의 도움으로 지름길을 찾아낸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알폰소 8세는 이슬람 군대를 기습했다. 전설에 따르면 알 나시르는 기독교 군대가 천막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 전사들을 사슬로 묶어 천막 밖에서 지키게 했다. 기독교 병사들이 노예 전사들을 모두 죽이고 천막으로 들어갔을 때 알 나시르는 멀리 달아난 뒤였다. 이슬람 측에서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기독교 군대의 희생은 2000여 명에 불과했다.
알폰소 8세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해의 일이었다. 마드리드 시의회와 마드리드 교구의 성직자들이 토지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마드리드 시청 소유인 시 외곽 들판에서 농산물을 수확한 뒤에 나오는 밀짚과 역시 시청 소유인 숲을 사용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싸운 것이었다. 두 부지의 사용 권리는 큰돈이 됐기 때문에 양측에게 소중한 자산이었다.
마드리드 시의회와 성직자들은 알폰소 8세에게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 알폰소 8세는 주저하지 않았다. 전투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마드리드 시의회의 은혜를 기억했던 것이었다.
“들판의 밀짚과 숲 사용권은 모두 시의회가 갖는다.”
알폰소 8세의 해답에 양측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성직자들은 불만을 터뜨린 반면 마드리드 시의회는 매우 만족했다. 기분이 매우 좋았던 시의회는 마드리드 시의 문장을 바꾸기로 했다.
원래 문장에는 곰만 있었는데, 스트로베리 나무 한 그루를 더 그려 넣기로 한 것이었다. 마드리드 인근의 숲이 시의회 소유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그림이었다. 그림 형태도 약간 바꿨다. 종전에는 곰이 네 발로 땅을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지만, 새로운 문장에서는 곰이 과일을 따 먹으려고 두 발로 나무를 디디고 선 그림이었다. 시의회가 여러 나무 중에서 스트로베리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마드리드 시의 문장 위에는 황금색 꽃잎이 새겨졌다. 아래에는 잔 모양 테 둘레에 흰색 별 7개가 그려졌다. 잔 안에는 곰이 스트로베리 나무에 두 발을 걸친 채 빨간색 스트로베리를 따먹으려고 입을 내민다.
곰 문양은 스페인프로축구 라리가의 명문 구단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단 문양에도 있다. 구단의 문양은 방패 모양이다. 위의 절반에는 파란색 테에 별 7개가 그려졌고, 테 안에는 역시 곰이 나무를 지탱하고 있다. 아래의 절반에는 빨간 색 기둥 4개가 그려졌다.
마드리드의 중심인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도 곰이 있다. 역시 스트로베리 나무를 짚고 선 곰 동상인데, 이름은 ‘엘 오소와 마드로노’다. 동상은 1963년 스페인 조각가 안토니오 나바로 산타페가 만들었다. 마드리드 시의회가 마드리드와 스페인을 상징하는 조각을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세우기로 결의함에 따라 만들어진 게 이 곰 동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