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중독 사회와 환원주의의 역설

단순함은 무지인가, 진실인가

by 민진성 mola mola

구조는 해답인가, 미로인가

오늘날 우리는 구조를 읽는 데 익숙하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 때문이다, 범죄는 도덕적 결핍이 아니라 사회적 배제의 산물이다, 정신질환은 뇌화학의 문제가 아니라 트라우마와 사회망 붕괴의 결과다. 이 모든 말은 일면 옳고, 해석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르면, 우리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구조를 읽을수록 문제는 거대해지고, 해법은 추상화된다. 그 순간 구조는 해답이 아니라 미로가 된다.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단순한 진실을 놓친다.



단순함은 무시된 진실일 수 있다

우리는 단순한 답을 경계한다. ‘게으른 결론짓기’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피해사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함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과, 본질이 단순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 아이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그 아이의 가정환경, 정서적 안정, 교사의 역량, 교육 정책, 사회문화적 요인까지 분석하려 든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하루 한 번의 칭찬일 수 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맥락 중독이라는 현대병

현대인은 ‘맥락’을 읽는 데 능숙하다. 철학은 구조를 해체하고, 심리학은 내면을 파고들며, 사회학은 거시적 맥락을 재구성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문제를 구조로 환원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고 습관이 자리잡는다. 우리는 원인을 더 깊이, 더 멀리, 더 복잡하게 찾는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그 지성은 정당화된 회피가 될 수도 있다.



환원주의의 역설에서 균형을 찾기

‘모든 것은 구조 때문이다’라는 말이 통찰에서 무기력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모든 것은 개인의 탓’이라는 환원주의는 폭력이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문제를 단순화하지 않되, 단순한 본질을 무시하지 말 것. 구조를 해석하되, 행동을 지연시키는 이유로 삼지 말 것. 의미를 찾되, 의미가 과잉되어 문제를 가려버리지 않게 할 것.

단순함은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지성의 마지막에 도달한 명료함일 수도 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도, 디지털 시대의 UX 설계도, 정제된 명제 하나로 세계를 바꾸어온 철학도 모두 단순함에서 출발했다.



단순하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어떤 문제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정말 그저 단순하다. 우리는 때로 ‘단순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잃은 채, 복잡한 설명만을 좇는다. 지적 탐구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서조차.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미루기 위해 지식을 호출하는 순간, 구조는 진실이 아니라 장막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되, 경솔하지 않게. 복잡하게 이해하되, 무력하지 않게. 그 사이에서만 우리는 문제를 명료하게 보고, 실질적인 해법을 실현할 수 있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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