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향한 다섯 가지 태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을 향해 걷는 법

by 민진성 mola mola

진리는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하나의 목표점으로 오해한다. 마치 그것에만 도달하면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해답이 주어질 것처럼. 하지만 철학은 오래전부터 그 기대에 반박해왔다. 진리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에 가깝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방향을 향해 걷고, 머물고, 질문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이는 과학의 태도이기도 하다. 과학은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증을 견디는 가설만을 남긴다. 그러니 진리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곧, 오류에 덜 취약한 사유구조를 마련해 나간다는 뜻이다.



하나의 눈이 아닌, 겹눈으로 본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대개 하나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법은 위법/합법으로, 경제는 효율/비효율로, 도덕은 옳음/그름으로 본다. 그러나 진리는 한 관점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관점이 서로를 교란하고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문학은 감정의 층위를, 철학은 논리의 골조를, 예술은 형상의 직관을, 심리학은 무의식의 소리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진리를 향한 사유는 반드시 학제적이고, 다중 프레임적이어야 한다.


한 쪽 눈을 가린 채, 깊이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깊이보다 중요한 건 연결이다

전문성은 곧 ‘깊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느 정도의 몰입과 집요한 파고듦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리에 가까워질 수 없다.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와 맥락 안에서의 위치, 즉 ‘연결’이다.


한 가지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그것이 전체 체계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의미망을 형성하느냐가 진리에 더 가깝다. 이는 곧 지식 간의 문법, 사유 간의 관계성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자기 확신을 의심하는 태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진리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의 위대함을 "반증 가능성"에서 보았다. 진리와 가까운 이론일수록, 반증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리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신이 간과한 것을 찾으려는 태도를 갖는다. 불편한 질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에게, 진리는 어느 틈으로든 다가온다.



진리의 편에 선다는 것

우리는 진리에 '닿을' 수 없지만, 진리의 편에 서서 살아갈 수는 있다. 진리를 향한 태도란,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감정적 동조보다, 구조적 성찰을 선택할 것, 자신이 옳다고 느낄 때일수록 한 번 더 멈출 것, 이기적 확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잠시 빌릴 것.

하버마스는 말한다. 진리는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성찰하는 태도 자체라고. 이 태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비록 진리를 소유하진 못해도, 그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진리는 한 번도 우리 손에 완전히 쥐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더 정직하게 사유하며, 더 넓은 시선으로 구조를 바라본다면, 그 진리라는 이름의 지평선은 어느 날 우리의 발밑에서 ‘길’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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