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의 윤리적 한계
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은 우리가 오랫동안 신봉해온 ‘본질’이라는 개념을 해체한다.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으며, 의미는 고정된 중심 없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그래서 어떤 행위나 발언도 단일한 해석으로 고정되지 않고, 모든 것은 ‘맥락’ 속에서 유동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판의 기준이 사라진다. 무엇을 잘못이라 규정할 것인가? 누구의 시선에서, 어떤 구조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권위와 중심을 해체했지만, 동시에 도덕적 판단의 근거도 해체했다. 이론적으로는 '다양성의 수용'이지만, 현실에서는 ‘무차별한 상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정철학은 모든 존재를 변화 중인 유기체로 본다. 정체성이란 단단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시간, 관계 속에서 계속 재형성된다. 그런데 문제는, ‘진행 중’이라는 말을 내세우면 현재의 책임이나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유예된다는 점이다.
이런 철학은 분명 현실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고통과 폭력의 현장에서는, 그 모호함이 오히려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 누가 가해자인가? 구조는 누구를 이롭게 하고, 누구를 억압하는가? 지금 이 사안에 대해 어떤 비판이 정당한가? 이런 질문 앞에서, 모든 것이 복잡하고 얽혀 있다는 설명은 윤리적 실천을 회피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구조와 흐름, 과정과 맥락을 이해하면서도 어떤 지점에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판단은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겠지만, 오류가 두려워 아무 판단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이다. 비판이 유의미하려면, 흐름에 ‘멈춤’을 부여하고 그 자리에서 행위자와 구조를 분리해 바라보는 잠정적 구획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은 현대철학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지만, 그 자체로는 윤리적 판단과 정치적 실천의 토대가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흐름을 읽되, 흐름에 침잠하지 않아야 한다. 흐름을 전제로 하되, 멈춤을 잠정적으로 허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멈춤 속에서만 비판이 다시 날카로워질 수 있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