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의 ‘회피적 형이상학’ 비판
철학은 언제나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 물음은 전통을, 권력을, 믿음을, 심지어 철학 자신까지도 해체하는 일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 칸트의 ‘이성 비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 이 모두가 철학의 비판적 기능을 보여주는 예다. 철학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의심할 수 있을 때만 철학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중심을 해체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해석은 끝이 없다. 과정철학은 모든 존재는 흐름 속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고정되지 않으며, 순간도, 실체도 없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든 해체되며, 어떤 비판도 '절대적 기준 없음'으로 회피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판은 어디까지나 대상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모든 것은 흐름이고, 해체되고, 다중 맥락으로 환원된다면 철학은 자신을 검증받지 않는 사유 체계, 즉 비판 불가능한 형이상학으로 전락한다. 이건 니체가 비판했던 플라톤적 ‘이데아’를 다시 부활시키는 꼴이다. 현실을 판단할 수 없는 사유는, 현실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공허한 신념으로 끝난다.
진짜 철학은, 자기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자기 해체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윤리를 전제한다. 비판은 철학의 무기이자 철학의 대상이다. 그 무기를 버리면, 철학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다.
비판을 수용할 수 없는 철학은, 더 이상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도피한 형이상학일 뿐이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