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전이, 그리고 사유의 책임

‘나’를 해결하지 않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해결되지 않은 고통, 다른 누군가를 향하다

CPTSD, 즉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이들은 흔히 '완치'라는 단어 앞에서 머뭇거린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트라우마의 흔적은 단순한 치료나 일시적인 안정으로 사라지지 않으며, 치료 이후에도 특유의 스트레스 민감성, 인지적 과부하, 대인 관계의 긴장감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종종 자신을 완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다음 세대에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그것이 의료, 법, 교육, 제도라는 이름의 언어로 전이되며, 자신의 아픔이 구조화되고 체계화되는 방식이다.



이것은 자기회피인가, 윤리적 사유인가?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흔히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즉, 내면의 결핍이나 고통을 직면하지 못하고 외부적 성취나 구조 개선으로 전이하려는 경향이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의 상처는 뒤로 밀리고, 세상을 위한 책임이 과도하게 부풀려진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한 방어기제로 환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고통을 해석 가능한 언어로 만들겠다’는 윤리적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고통의 사회적 의미화, “나만 아프지 않으면 된다”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 말이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고통의 책임을 감당하려는 성찰의 이행일 수 있다.



과정에 집중하는 철학, 구조를 지향하는 시선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 또는 예방의학적 사고는 결과나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왜 발생했는지를 구조적·역사적으로 되짚고, ‘되풀이되지 않을 환경’을 설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철학적 구조는 개인의 경험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CPTSD를 경험한 이들이 ‘완치’라는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그 고통이 발생한 맥락을 분석하고,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 기준, 발달 수준별 책임, 사회적 안전망 등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의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라는 물음이고, 그 물음은 결국 구조를 향한 사유로 연결된다.



자기소외일까, 사유의 진화일까?

때때로 이 구조적 사유는 자기문제를 등진 자기소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조를 만드는 사람은 고통을 덮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공공의 언어로, 사회적 개념으로 번역한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건 자기회피일까?”가 아니라 “이건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유인가?” 완치되지 않은 고통을 끌어안고, 그 고통을 다시 사회로 발화하는 이들은 ‘전이의 기술자’다. 개인적 아픔을 공공 구조로 전환해내는 존재. 즉, 고통을 다음 세대의 예방적 질서로 재구성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삶의 시작에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그 고통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삶을 산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그들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꾸려 하고, 증상이 아닌 구조를 바꾸려 하며, 회복이 아닌 재발 없는 환경을 설계하려 한다. 그들은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구하진 못했지만, 너는 다를 수 있도록 했다”고.


완치되지 않은 이들이 구조를 바꾼다. 그건 자기회피가 아니다. 그건 윤리의 실천이고, 사유의 혁신이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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