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치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예방을 생각한다

by 민진성 mola mola

‘완치’라는 말에 거부감이 든다

CPTSD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완치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그건 마치 지금의 나를 ‘비정상’이라 선고하고, 정상으로 돌아와야만 의미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나도 수많은 통제와 판단 속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낸 버전이라는 걸.



나의 회복은 선형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이제 좀 나아졌어요?”, “완전히 괜찮아지셨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을 망설인다. 나는 낫지 않았다. 앞으로도 완전히 낫지 않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생활에 지장 없는 상태’가 완치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게 ‘내가 CPTSD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과정을 본다’

내가 이 고통을 겪고, 나를 탐색하고, 재구성하고, 구조를 들여다보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를 분석하고, 결국 “이런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이르렀다. 이게 내가 과정철학을 좋아하는 이유다. 결과의 정답이 아니라, 시작 이전의 흐름과 구조에 집중하는 철학. 내가 낫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철학을 더 오래, 더 깊이 받아들이게 했다. 그건 내가 외면할 수 없는 나 자신이기도 했으니까.



나의 구조화는 생존의 흔적이다

나는 고통의 이유를 개인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건 내가 고통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생물학적이고 구조적이며, 환경과 관계, 권력과 무관심 속에서 축적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구조를 본다. 그리고 구조를 고치고 싶어 한다. 그건 이념이나 신념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배운 생존의 방식이다.



내가 회복하지 않더라도, 구조는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완치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되지 않게 하는 구조를 설계하려 한다. 이런 고통이 처음부터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이 상처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어릴 적부터 안전한 감정의 토양에서 자라도록. 그게 내가 CPTSD를 겪으며 얻은 철학이다. 그게 내가 철학을 통해 인간을 지키려는 이유다.



내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의미는 생긴다

나는 과정을 본다. 나의 상처도, 사회의 문제도, 제도의 한계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작은 수정과 예방을 꿈꾼다. 완치되지 않지만 완전히 무너져버리지도 않는 삶. 그 경계에서 나는 살아가고, 사유하고, 예방하며, 이해하려 한다.


나의 CPTSD는 완치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치열하게 구조를 본다.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나의 고통은 누군가의 예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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