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이전에 머무는 자가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하여
“나는 항상 시작에 머문다. 아니, 시작 그 이전에 머문다.” 이 말은 시처럼 아름답지만, 때로는 삶을 흐리게 한다. 우리는 ‘결과 없는 사유’로도 살아갈 수 있을까?
과정철학은 이 세계를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지속적 생성’으로 본다.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이를 “being is becoming”이라 말했고, 들뢰즈(Deleuze)는 이 흐름 속의 차이와 반복을 사유했다. 과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에서 살아간다. 밥을 짓는 과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밥이 없으면 배는 고프다. 결과는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현존의 조건이다.
과정철학적 사고는 다음과 같은 성향을 띤다. 원인과 뿌리를 탐색한다. 모든 현재를 과정 중 일부로 환원한다. 결과를 '완성'이 아니라 '일시적 정지'로 본다. 이것은 깊은 통찰을 가능케 하지만, 동시에 현재에 대한 책임감을 희석시킬 위험도 있다. “아직 과정이야”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는 유예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과정 중심의 사유는 미완성의 정당성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결과로 평가한다. 시험은 점수로, 글은 조회수로, 정치인은 지표로, 기업은 실적으로, 사람은 성과로. 물론 이 모두가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냉혹한 현실이 결과를 실체로 만든다.
과정에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결과 앞에서 상처받기 쉽다. 그 결과가 자신의 철학과 무관하게, 그저 숫자와 모양으로 드러날 때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결과가 나를 무너뜨린다면, 나는 왜 과정을 선택했던가?”, “내 과정은 결과 없이도 스스로 완전한가?” 이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과정과 결과가 이어진다.
과정을 중시하는 철학은 결과를 부정하는 철학이 아니라, 결과를 내포하는 철학이어야 한다. 모든 생성은 하나의 완성의 순간을 품는다. 그 결과가 있어야 다음 과정도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시작에 머문다. 그러나 이제는 결과를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흐르고 있지만, 흐름의 끝자락에서 잠시 멈춰본다. 그 멈춤이 있어야 다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