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의 평등이 오히려 평등을 해치는 이유
평등을 외치며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과연 평등해졌는가? 아니면 단지, ‘같게 보이기’ 위해 다름을 억눌렀을 뿐인가.
“평등”이라는 말은 이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사람마다 평등이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자유주의자는 기회의 평등을 말한다. 반면 평등주의자는 종종 결과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용어의 차이를 넘어, 사회구조와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근본적 관점 차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둘은 종종 충돌한다.
결과의 평등은 말 그대로, 사람마다 성과나 성취의 수준을 같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1. 개성과 자유의 억압
각자가 가진 능력, 성향, 노력, 욕망은 다르다. 그런데 결과를 같게 하려면 이 차이를 무시해야 한다. 이는 곧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예컨대, 똑같이 10시간 공부한 두 학생이 다른 성적을 받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면, 더 나은 성과를 낸 학생의 점수를 낮추거나, 다른 학생의 점수를 끌어올려야 한다. 결국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노력의 가치는 사라진다.
2. 역차별의 구조화
결과의 평등은 결국 더 많이 이룬 자에게서 덜 이룬 자로의 일방적 재분배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그 ‘더 많이 이룬 것’이 부정한 방식이 아니라, 정당한 노력과 선택의 결과일 때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구조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지 못한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없는 사회는, 결국 동기를 잃고 침체로 향한다.
진짜 평등은 출발선이 공정하게 보장되는 것이다. 누구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출신 지역이나 성향에 상관없이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가 서로 달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 차이는 다양성과 자유의 증거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언뜻 따뜻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는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안는다. 능력주의 자체에 대한 불신, 공정한 경쟁에 대한 냉소, 노력보다 배려가 우선시되는 구조, 그리고 결국, 정치적 조정으로 가려는 유혹.
결과가 동일하다면, 사람들은 점점 노력하지 않게 된다. 노력의 차이가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덜 노력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 구조는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성장과 자율의 기반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
평등은 '같음'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받는 조건'이다. 우리는 기본권을 보장받고, 차별 없이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은 각자의 선택과 책임으로 남겨져야 한다. 결과까지 똑같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 될 수 있다.
평등을 말할 때, 우리는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결과’를 평등하게 조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선택이 사회의 방향을 바꾼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