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평등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서 온다
우리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에도 쉽게 이입한다. 누군가의 부동산 소득, 대출로 부를 만든 사람, 부모 찬스로 유리한 출발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례들은 너무 쉽게 감정을 자극한다. "왜 쟤는 저렇게 쉽게 살지?",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지?" 이때 ‘정의’는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로 치환된 분노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너무 자주 ‘정책’을 움직인다.
감정은 빠르다. 쉽게 설득되고, 쉽게 연결되고, 쉽게 퍼진다. “영끌해서 집 산 사람, 고통받게 해야지”, “강남 아파트 가진 사람, 세금 더 내야지”, “대출 많이 받는 사람, 규제해버려야지” 이런 구호는 ‘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현실 구조를 무시한 채 동질성과 감정 동화를 앞세운 ‘도덕주의적 정의’일 뿐이다.
진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다. 결과를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접근성이 공정하게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읽어야 한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자산을 형성했는가, 그들이 감수한 리스크는 무엇이었는가, 제도가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했는가. 이런 질문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시민이 감정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기회 보장과, 장기적 형평성의 구조 설계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감정적으로 대출을 틀어막는 게 아니라, 신용과 리스크를 정밀하게 구분해서 설계해야 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만든 방식이 정당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세를 내놓는 집주인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기망행위가 일어나는 구조를 차단해야 한다. 그게 윤리적 행정이고, 그게 정의로운 사회 설계자의 자세다.
공정하다는 감정은 때로 진실을 왜곡하고, 구조적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선의로 한 정책이 되레 청년의 기회를 박탈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진행된 세금 정책이 중산층을 붕괴시킨다. 부동산 규제 강화가 실거주자와 무주택자의 갈등을 유발한다. 모두 감정이 먼저 작동하고, 구조는 그 뒤에 오는 사회의 결과다.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은 감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나의 감정이 진실을 덮고 있지는 않은가?"를 물어야 한다. 감정은 필요하다. 분노는 변화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정책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정에 움직이되, 구조로 판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자유주의자에 가깝다. 그러나 평등을 더 중시하는 사람조차, 감정에 의한 설계가 아닌, 구조에 의한 설계를 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철학이든 그 근본에는 인간 존엄과, 삶의 기회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존중은,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구조로 실현된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감정에 설득당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감정은 구조를 더 나아지게 하는가, 아니면 눈앞의 위안을 주는가?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회가, 진짜 성숙한 민주사회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