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오해한 정부, 신뢰받지 못하는 정책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현실의 경제 구조를 무시한 도덕적 슬로건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는(live)” 곳을 갖기 위해서 반드시 “사는(buy)” 선택을 고민해야만 한다. 지금의 정부는 마치 실거주와 소유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만들며 자산 축적의 경로로서 정당한 투자를 ‘불순한 투기’로 규정한다.
주식 시장에서 단기 매매는 흔한 전략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타이밍을 연구한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부동산에서 일어났을 때만 ‘도덕적 문제’로 몰린다. 왜일까? 땀 흘리지 않았기 때문? 시간을 오래 들이지 않았기 때문? 아니다. 문제는 근대적 노동 가치관이 아직도 우리의 정책 결정 구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를 통해 부를 일구는 사람들을 ‘불로소득자’라 부르며, 그들이 감수한 위험과 분석한 수고는 보이지 않는 척 한다.
국가의 역할은 투자를 막는 것이 아니다. 기망행위를 막고, 신뢰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세사기, 불법 중개, 부실 대출 구조 등은 모두 투자가 아니라 사기다. 자기 자본 없이 빚으로 주택을 매입해 남에게 떠넘기는 구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저신용 대출 상품, 정보를 속이거나 조작하는 행위. 이런 ‘불신을 야기하는 행위’를 규제해야지, 자기 신용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의 투자마저 제한하는 건 정상적 자본주의의 기능을 훼손한다.
문제는 대출 ‘총액’이 아니다. 그 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월 5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5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반면 월 5,0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20억 원을 대출받았다. 표면적으로는 20억 원 대출자가 더 위험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상환 능력은 월 5,000만 원 버는 사람이 훨씬 높다. 그의 총부채상환비율(DTI)은 낮고, 신용등급도 우수하며, 이자 비용이 전체 소득의 일정 비율 이내로 안정적으로 관리된다. 그런데도 정책은 단지 ‘20억 원’이라는 숫자를 문제 삼아 그를 규제 대상으로 만든다. 이건 신용에 대한 모욕이다.
최근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 이내로 제한했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자산은 적지만 소득이 높은 청년층이다. 자산이 부족해도 안정적인 직업과 수입이 있고 충분히 상환할 능력이 있는 이들 말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이자 앞으로의 경제 생산 주체들이다. 그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절대 금액만 보는 규제는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장기적 신뢰 기반 자체를 훼손하는 일이다.
이제는 묻자.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있는가? 국가는 신뢰를 관리하고 있는가? 정책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가장 위험한 건 “투기는 나쁘다”, “대출은 죄다”, “사는 사람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규범으로 경제를 재단하는 태도다. 우리는 이제 경제를, 자본을, 신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그 ‘있는 그대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 자체를 죄악시하며 잘라내는 것이 아니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