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망과 구조는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담론은 유난히 윤리적이다. 전세를 내놓는 다주택자는 ‘악당’이 되고, 투자자는 ‘불로소득자’가 되며, 대출을 받은 사람은 ‘빚에 중독된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는 구조의 문제를 도덕의 틀로 환원시킨 것이다. 그 결과, 정상적 경제 행위까지 낙인 찍히는 현상이 벌어진다.
국가의 역할은 분명하다. 시장의 정직성을 확보하고,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며, 사기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책은 이 역할을 오해하고 있다. 불완전한 시스템 속에서 발생한 사기 피해를, 투자자 전체의 윤리적 문제로 둔갑시킨다. 하지만 전세사기 같은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속인 사람"이 문제지, "빌려준 사람"이나 "빌린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대출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보편적인 신뢰 행위다.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현재의 자산을 구매하는 구조는, 기업 활동은 물론 대부분의 생애 설계에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갭투자”라는 말 하나로, 정상적 대출을 통한 구매를 도덕적 문제로 본다. 이는 근대적 노동 중심 윤리관의 잔재다. 마치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여야만 정당한 소득이 된다는 관념. 그러나 현대 경제는 정보, 분석, 선택, 위험 감수 역시 노력의 형태로 인정해야 한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대출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신용을 포장하고, 위험을 감춘 시스템의 위선 때문이었다. 대출을 남발한 것, 상환 능력을 증명하지 않은 것, 그것을 포장해 투자 상품으로 판 것, 신용등급 평가 기관이 이를 ‘안전하다’고 보증한 것. 즉, 신용 자체가 왜곡되고, 그로 인해 시장 전체가 오작동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투자를 ‘노력 없는 이득’으로 보고, 대출은 ‘신용을 넘은 사치’로 여기며, 결국 모든 문제를 “탐욕”으로 수렴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위선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시에 안정적인 월세를 원하면서도 전세를 내놓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 말하고, 금융 이득은 부러워하면서도 투자는 도박이라 비난한다. 이것은 탐욕의 문제라기보다,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신뢰할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투기를 막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윤리적 낙인이 아니라, 기망이 불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전세 사기를 막고 싶다면 임대인의 부채 정보와 등기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갭투자의 위험성을 관리하고 싶다면 대출에 상환 능력을 명확히 반영하고, 리스크를 가격에 내포시켜야 한다. 자산 불균형을 완화하고 싶다면 시장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그 안의 룰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대출은 죄가 아니다. 신용은 죄가 아니다. 투자도 죄가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그 행위가 이익을 얻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정직했는가”를 설계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싸워야 한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