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주택담보대출 총량 규제는 그 취지를 보면 ‘과도한 레버리지 억제’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모순적이다. 주택가격과 관계없이 대출한도는 6억 원으로 묶였다. 이는 연소득이 수억 원에 달하는 고신용·고소득 청년조차 6억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돈을 벌 능력은 있지만, 자산이 아직 없는 사람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지금의 정책은 청년층 전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청년 중에서도 '현금 흐름은 좋지만 자산은 없는' 계층, 즉 고소득 전문직/프리랜서/IT업계 종사자/자영업자들이 타깃이 됐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기존 자산보다는 미래의 소득흐름이 탄탄하다. 사회적 역할과 생산성이 높다. 그러나 부모의 자산 이전 없이 자력으로 자산 형성이 어렵다. 이들에게 대출은 유일한 사다리이자 기회였다. 그러나 이번 정책은 그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국가는 오히려 이런 청년층이 안정적으로 주거를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금융을 설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향후 국가 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세대이며 고령화된 사회의 조세 기반을 책임질 유일한 계층이며, 새로운 산업을 이끌 창의적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격 자체를 박탈하고, “대출도 받지 말고, 집도 사지 말라”고 말하는 셈이다.
정부의 근거는 항상 “시장의 과열”과 “가계부채의 위협”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험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위험을 몰라서 감수하는 무지, 신용에 비해 과도하게 빌려주는 일부 금융사, 그리고 구조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대출 규제의 올바른 방향은 총량 규제가 아니다. 정확히는, 능력 있는 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정보 비대칭을 줄이며, 기망 행위에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건 중세다. 현재의 대출 규제는 소득보다 자산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회를 지향한다. 자산이 많은 사람은 쉽게 자산을 더 늘릴 수 있고,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부모 찬스를 못 받은 사람은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자산 계급에 의한 사회적 봉쇄"를 공식화한 셈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소득에 기반한 신용으로 계층 이동의 기회를 설계한다. 반면 한국은 자산 보유 유무에 따라 기회의 문을 닫고 있다.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봉건주의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는 묻는다. “어떻게 해야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묻지 않는다. “누가 그 집에 살아야 하는가?”, “누가 이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구조를 짜고 있는가?” 대출 규제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누구에게 기회를 주고, 누구를 배제할지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지금 이 규제는, 가장 능력 있는 청년을 가장 먼저 버린 정책이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