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감정은 아직 봉건적이다

한국 사회는 왜 금융을 미워하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금융은 작동하지만, 감정은 따라오지 않는다

한국은 분명 자본주의 국가다. 모든 시민은 부를 추구할 자유가 있고, 시장은 열려 있으며, 법은 소유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누군가 금융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를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단기간에 자산을 불린 투자자, 정보력으로 차익을 본 자본가, 레버리지로 순자산을 끌어올린 사람들. 이들의 행위는 법적으론 문제없다. 오히려 많은 세금을 내고, 시장 유동성을 높이며, 리스크를 감내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정당한 플레이어’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왜 그럴까?



“왜 저 사람은 고생하지 않고 돈을 벌었는가?”

이 질문에 한국 사회는 예민하다. 왜냐하면 한국은 ‘고생 = 정당성’이라는 서사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은근한 환원 구조에 길들여져 있다. 오래 일한 사람 = 착하다, 많이 참은 사람 = 가치 있다, 손해 본 사람 = 도덕적이다 반대로, 빨리 성공한 사람 = 뭔가 수상하다, 자산으로 수익을 얻은 사람 = ‘불로소득’이다, 남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 = 기회를 훔쳤다. 이런 감정 구조는 금융의 본질과 충돌한다. 금융은 고통보다 판단의 정확도, 정보의 활용력, 리스크 감내력으로 작동한다.



정치와 여론은 이 감정 구조를 이용한다

정치인들은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주택 투기꾼”, “비정상 차익”, “부동산 불로소득”이라는 프레임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금융 활동 자체를 죄악시하는 감정 코드를 호출하는 것. 이건 윤리의 문제이기 전에, 권력의 수사다. 그리고 그 수사는 한국 사회의 감정적 근대주의와 놀랍도록 잘 맞물려 있다.



그래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왜곡된다

투자자는 합법적으로 설계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지만, 사회는 그를 '합법적이지만 부정한 사람'으로 여긴다. 법은 그의 권리를 보호하지만, 감정은 그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얻는 수익은 세금과 함께 국가에 기여하면서도, 공적 공간에서는 침묵하거나, 죄책감을 전제한 해명으로 이어진다.



시스템은 자본주의지만, 감정은 봉건적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자본주의를 원하나, 아니면 자본주의처럼 보이길 원할 뿐인가?” 투자를 죄악시하고, 금융을 기피하며, 고통만을 유일한 노력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건 단지 근대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감정 공동체다. 진짜 자본주의는, 땀보다 판단을 인정하고, 고통보다 구조를 읽는 능력을 존중하며, 도덕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용기 있는 행위자’를 긍정하는 체계다. 그 체계가 작동하려면 우리의 감정도, 윤리도, 언어도 이제는 제도와 함께 성숙해져야 한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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