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들리지 않지만, 가장 먼저 필요했던 목소리
대부분의 철학은 결과를 바라본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 판단은 옳았는가’,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라는 식으로. 즉, 병이 발생한 이후의 처방에 집중한다. 우리는 이런 철학을 좋아한다. 명확하고 단호하며, 답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고통을 멈춰주는 진통제처럼, 사람들은 철학에서도 ‘결과’를 원한다.
과정철학은 다른 곳을 본다. 결과 이전, 선택 이전, 말 이전.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의 흐름과 움직임, 변화의 감각에 주목한다. 어쩌면 이건 철학계의 ‘예방의학’이다. 병이 일어나기 전에, 위기가 오기 전에, 구조가 왜곡되기 전에 조심스럽게 흐름을 읽고, 변화를 감지하고, 작은 균열을 예민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고통을 멈추는 능력에는 환호하지만, 고통을 ‘예방하는 노력’에는 무관심하다. 백신은 비용만 많이 들고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공공 예방 시스템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예방은 ‘위기를 없앰’으로써 자신의 가치마저 지워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통제를 찾는다. 이미 망가진 뒤의 철학, 이미 늦은 뒤의 대안, 이미 터진 뒤의 수습.
그렇기에 과정철학은 ‘주류’가 되지 못했다. 정치가 원하는 것은 단호한 결론, 경제가 원하는 것은 즉각적 성과, 사회가 원하는 것은 선명한 메시지다. 과정철학은 이 중 어느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을 예방하려 한다. 그 철학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없애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보이지 않고, 주목받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안다. 공중보건의 핵심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라는 것을. 사회적 재난의 핵심은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감지라는 것을. 정치적 실수의 근원은 결정 그 자체보다,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왜곡된 ‘구조’에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을 감지하고 말해주는 철학, 그것이 바로 과정철학이다.
누군가는 진통제를 만들어야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칼을 들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결과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시대, 다시 한 번 과정을 사유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그 철학이 가장 먼 미래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
병이 생긴 뒤의 후회는 항상 빠르다.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철학은, 항상 너무 느리다. 그래서 예방은 철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은, 다시 예방이 되어야 한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