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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연 Feb 13. 2024

소개팅 #1

건축구조기술사

"안녕하세요. 이초연이라고 합니다. 일찍 자리에 앉으셨을까요?"

"아닙니다! 10분 전에 오셨는데요 뭘..ㅎㅎ"

"아, 네..!"

"아.. 실물이랑 똑같으세요!"

"네? 아, 사진이랑요 ㅎㅎ!?"

"아, 네! 실물이 아니라 사진이랑요 제가 헛소리를.."

"아, 아닙니다! 그러실 수 있지요!"

카페에 들어서자, 소개팅 상대가 왔다는 걸 인지한 남성은 자리에 일어서서 나를 맞이했다. 무신사에서 세트를 맞춘 듯한 느낌이 팍 나는 검은색 싱글 코트-검은색 맨투맨-검은색 스키니진-검은색 로퍼. 그의 아우터는 특히나, 턱시도와 코트의 그 사이 어디쯤에 놓여있었다. 내 모습이 실물과 같다는 그분의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작으로 우리는 운을 뗐다.


취미가 무엇인지, 회사 생활은 어떠한지, 부모님은 강녕하신지, 조카들에 대한 형제자매의 학구열은 얼마나 높은지 등등 서로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종목에서 비등비등해하는 나와 그 남성분은, 한 종목이 끝나면 끄덕끄덕하며 다시금 음료를 마시곤 했다. 마지막으로 그와 나의 나이 차이는 6살. 그런 그는 마지막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한 방을 준비했다.


"초연씨, 제가 초연씨 나이일 적에 분양에 당첨이 되어서요, 사실 종로구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에도 저희 집에 식구들을 초대할 수 있었던 거고요. 이제 곧 35평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이사 갈 예정입니다."


만난 지 한 시간이 되지 않아, 그의 재력과 자차의 소유여부까지 우연찮게 알아버린 6살 어린 이초연은 그걸 듣고 "어머나!" 했어야 했는가. 그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강점에 대해 말함으로써 연애시장에서 조금 더 높은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나에게서는 재력이 그다지 상대를 보는 데 있어서 끌리는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이너스였다고 해야 할까.


나는 햇빛이 나의 눈을 똑똑 두드리는 탓에 잠시 햇빛가리개를 내려달라 사장님께 부탁드리고 온다고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내 어깨 위에 따스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의 두 손이 내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는 나를 만류하는 시늉을 내며, 무의식적으로 나를 터치했던 것이다. 터치보다는 내 몸에 잔류한 시간이 좀 길었으니, 만졌다는 표현으로 정정해 보도록 하겠다. 시간을 보았다. 1시 45분. 마음이 결정되었다. 들어온 지 45분이 되는 바로 이 순간. 3시가 되기 15분 전에 집에 가는 걸로.


결국 그분은 자리를 옮겼고, 자신은 이타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다고 했다. 햇빛가리개를 통해 나온 말이었을까. 누구에게 부탁을 하는 게 싫다는 뜻이었겠지 하며 이해하려는 찰나, 그는 다시 '이타'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까, 우리는 서로 부모님의 직업까지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칠순잔치에 무엇을 서로 해놓을 것인지까지 말을 하게 됐다.


회사, 부모님, 친척, 조카, 형제자매, 친구, 술, 담배, 게임, 유흥, 자차, 자가, 취미, 특기, 연봉…


언제쯤 음악과 책, 운동,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첫 만남에 자신의 교환가치에 상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세속적인 것들을 물어, 한 번일지도 모르는 그 숭고한 시간을 방탕하게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이 글을 읽는 그대 또한, 우선적으로 영혼이 통하길 바라는지, 물질적으로 순응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숙고하길 바란다.


"조심히 들어가셨나요, 제가 깊게 생각해 보니,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것 같네요. 좋은 연인 만나시길 바랍니다 :) 평안한 밤 되세요."


플러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만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터치는 자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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