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초연 Feb 20. 2024

소개팅 #3-1

개발자

판교에 근무하는 그와 광화문에 있던 내가 만날 수 있는 중간 지점은 송파나루 어귀였다. 우리는 6시까지 요찌무라는 소바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울인데 무슨 소바인가 싶기도 하다. 무튼, 잠실역에서 내렸던 그와 송파나루역에서 하차했던 나는, 길 대로변 가운데에서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웨이팅이 있을까요?"
"아뇨, 이른 시간이라 그냥 들어가면 될 듯싶어요."


사전에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고 카톡에서는 신나게 떠들어왔던 우리지만, INFJ(그)와 INTJ(나)의 언어적 표현은 그리 출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게 알바분께서 우리의 정적을 깨 주셨다고 해야 할까. 요새들어 6~7살 차이를 주로 소개를 받아온 나로서는 이 사람 또한 나와 6살 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랐다. 왜냐, 전혀 30대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체형과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키. 눈썹과 인중 정리가 굉장히 깔끔히 잘 되어 있는 사람이었기에, 옷 또한 셔츠와 슬랙스가 잘 어울리는 그였다.


마그마 정원이라는 미디엄의 스테이크가 나오고 나서, 운을 띄었다.

"드실 만하세요? 맛은 어떠신지.."

그는 끄덕이고는 "먹을만하네요."라는 짧은 감상평을 던졌다. 그리고서는 또 정적.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맛품평이 이어지고서는 각자 취미에 대해서 물어보곤 하였다. 사내 동호회, 독서, 운동 등등 정말 상대방이 관심 있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한 번씩 꼭 거쳐나갔다. 부모님의 안녕과 자신의 자랑스러움을 펼치지 않아서, 은은한 구도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나.


그러다, 밥을 다 먹고서는 내가 먼저 일어나자고 했다. 그는 밥 먹자마자 가버리는 나에게 약간은 당황을 했는지, 나를 슬쩍 쳐다보고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매만지곤 하였다. 나는 그저 카페를 가자는 이야기였는데, 그는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나보다. 얼른 식당 밖에 나가 정정해야겠다.


식당 앞에서 한 걸음 발을 떼고, 그를 바라보니, 그는 이미 사알짝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그 기류를 눈치채고,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시간 있으시면, 같이 카페.. 가실래요?"

그 앞에 조건문, "시간 있으시면."을 왜 넣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머릿속으로 필터링하기 전에 입으로 먼저 튀어나온 말이었기에 문맥상 매끄럽지 않았고, 나의 마음을 지켜주지도 않았다.


"네, 뭐, 그러시죠."

그는 이미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하며 옆에서 뚜욱딱. 뚜욱딱. 거리는 와중, 남성분은 네이버 지도를 통해 카페를 찾아보고 있었다. 역시 나보다 연장자인 경력직은 조금 다른가 싶으면서 그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걸었다. 카페에 들어서서는 코트를 벗어놓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회사 일은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운동은 몇 분할 정도하세요?
"책은 어떤 분야를 주로 읽으시는지.."

아까 밥을 먹으면서 살짝 얘기해 왔던 주제를 심화하는 시간이었다. 연애와 시답지 않은 세속적인 질문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정말 상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지내왔는지에 대한 질문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헬스"라는 공통점을 찾았고, 어느덧 서로의 입가에서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로 낯가림이 풀어졌다.


수원에 사는 그를 위해 9시가 되기 20분 전에 카페를 나와 석촌호수를 향해 걸었다. 우리는 모두 2호선을 타야 했기에. 그런데 중요한 지점은, 떨림과 낯섦 둘 다 없다는 것. 그저, 이 발걸음이 마지막인 듯, 나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모두 쏟아내었다. 신나게 물어본 탓에, 그에 대한 연애정보를 끝마무리에 알 수 있었다. 그는 헤어진 지 1년이 되지 않았고, 지난번의 사랑은 소개팅을 통해 만남이 이뤄졌다고 답했다. 그의 말에는 쓸쓸함이 묻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마음 정리를 완벽하게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씩씩하게 각자의 방향, 사당과 성수행으로 흩어졌고, 나는 돌아가는 길에 그를 떠올리며 작은 아쉬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낯선 이 기분. 설마 시작인가 나 혼자. 스스로에게 되물어 가며, 혹시 모를 쌍방향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물어보기 위해 그에게 선톡을 보냈다.

"즐거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해주셔서... 재밌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 십분 뒤에 그의 답장을 받고서는 나는 씨익 웃음이 지어졌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새싹이 만들어졌다. 그에 대한 새싹이겠지. 나는 이 새싹을 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저도 즐거웠습니다 ~! 고생하셨어요. 저는 아직도 가는 중이랍니다 ㅎㅎㅎ 안 피곤하세요? 일찍 주무셔야 할 텐데요. 푹 쉬고 걔셔요. 민망하게 오타 났네요.. 누구나 완벽해 보이고 싶은 법이죠 하핫."


매거진의 이전글 소개팅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