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20분 전에 카페에 들어섰다. 나도 모르게 에프터라는 약속에 설레었는지,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너무도 일찍 집에서 발걸음을 떼고 만 것이다. 약속시간 정각이 되어서 그에게 카톡이 왔다. "도착하셨나요?" 난, 도착했다는 물음 대신 뒤를 돌아 창밖에 서있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수줍은 듯이 한 번 씨익 웃고서는, 카페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지난 첫 만남에 취미와 관심분야에 대해 얘기를 했으므로, 딱히 주제거리가 없었지만, 우리는 각자가 사회에서 도맡은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카카오 개발자였던 그는 AI 블루투스 스피커 관련 개발을 진행했다고 하며, 카카오의 하나의 웃픈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글, 네이버, 카카오 AI 스피커를 모아 "임진왜란이 일어난 연도는?"이라는 질문을 한 실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구글과 네이버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연도를 정확히 파악해 알려주었지만, 카카오는.. "임진왜란아 ~ 엄마아빠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난 거야?" 하며, "일어난"을 "WAKE UP"으로 직역하여 반응했다. 그 뒤로 카카오에서 뒤늦은 성능개발을 시작했다는... 하나의 재미난 이야기로 우리는 조용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꿀 수 있었다.
연달아 나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아동학대 통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통계 데이터 클리닝 및 타기관의 요구자료 대응을 위해서는 반드시 아동학대에 대한 사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내 위치와, 그 사례를 인지하고서부터 감당하게 되는 정서적인 반응에 대해 말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소득활동을 하고 싶지 않았던 삶의 가치관을 덧붙여 말해주니, 그는 어떠한 생각에 빠졌는지 조금은 조용해지곤 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사회에서 맡은 이야기로 3시간이라는 시간을 보내었다. 말이 오고 가는 동안 그에게 보였던 다양한 표정들과 진심들로 나는, 점차 그에 대한 호감의 정도가 강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비가 더 거세게 오기 전에 카페를 나서, 지하철 입구 어귀로 향했다. 어색함이 풀어졌는지 간간이 나오는 장난과 재치에 우리는 각자 우산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가까이에 붙어 티키타카하는 꼴이었다.
"저기.. 말 놓으셔도 돼요 :)"
"앗.. 네... 응.."
"조심히 들어, 들어가세요! 들어가!"
"네, 들어가면 연락해!"
에프터로 우리는 마지막이 될까, 아니면, 삼프터로 이어질까. 난, 연락과 만남이 이어질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어, 먼저 존대 내려놓기를 제안했다. 그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을까. 우리는, 아니, 아직 나와 그는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