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사귈래?"라는 세음절이 내 뇌세포들을 도미노 했다. 지하철 개찰구 어귀에서 "잘 가"라는 인사와 더불어 한 손을 뻗어 인사치레를 하던 내 행동은 무너졌다. 퇴근 시각 7시경, 수많은 인파 속에서 던져 나온 외침은 적잖이 당혹스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충분한 타이밍이 있었음에도.. 그 말이 전달되는 장소가 지하철 개찰구 어귀였어야 했나.
지난 만남에 존대를 포기한 남녀 둘이 드립커피 집에서 다시 만남을 가졌다. 혜화에 들릴 일이 있던 그는,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나를 잠시 보고 간다 하였다. 광화문과 혜화의 거리는 안국에 끼어있으므로, 인사동의 감수성으로 그를 맞이하고자 하였다. 다만, 그가 먼저 '블루 마운틴'이라는 드립커피를 발견하고서는 그 커피의 향과 함께 오후의 피로를 즐겼다.
그는 세 번째 만남이 되어서야 첫인상을 물어보았다. 이건 기회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을 말하는 것은 고백을 하게 되는 윤활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첫인상은 되게 차가웠다고 한다. 본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 가고자 하는 눈치였다고 말을 해왔다. 첫 만남에 내가 밥을 먹자마자 밖으로 나가자고 했던 그 말들 때문이었을까. 다만,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보았던 나의 표정들에 일말의 호감이 생겼다고 한다.
남녀 둘이 세 번 이상 만나는데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인연이 아닌 거다. 다만, 우리는 세 번의 만남에 끝에 이성적인 호감을 느꼈고, 그 호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자 연인관계로 이어나가고자 하였다. 단 세 번의 만남.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 눈이 내리는 2월의 오후에, 옆을 바라보니 어떠한 남성이 나와 나란히 서있곤 하다. 크게 들이쉬고, 날숨을 뱉었다. 날숨이 하얗게 공기 중으로 보인다. 그와 발걸음 속도가 맞춰서 걸어진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통일된 호감에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렇게 세 번의 소개팅 만에 또 하나의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6살 차이의 연상의 남성. 이자는 누구일까. 이자를 통해 나는 어떻게 변해갈까. 사랑의 형태는 지속될까. 크고 작은 물음들과 걱정거리들이 지나가지만, 오늘의 용기는 가상했다. 이초연,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