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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헬 Aug 26. 2021

쓰고 싶은 시간

마흔 해 남짓 켜켜이 쌓인 기억 속에서 어떤 생각이 고개를 들면, 문득 마음이 급해진다.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고 살살 잡아당기면 엉킨 줄 알았던, 그래서 풀 생각 조차 못했던 어떤 이야기가 가닥가닥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불안해진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뭐라도 어서 쓰고 싶은데, 급한 마음에 놓치면 안 될 것들을 건너뛰고 빨리 한 줄을 쓰고 싶을까 봐. 빨리 마지막 문장을 쓰고 싶을까 봐.


기억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잠자고 있다. 이름 붙지 못한 그것들이 똬리를 틀고 기다리다가, 길을 걸을 때, 책을 읽을 때,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 아스라이 얼굴을 든다. 이야기를 겁내던 내 앞에. 쓰고 싶은 설렘과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뒤섞여 아무것도 쓰지 못하던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기억을 더듬거리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경외하기를 멈추고 기억하기 시작했을 때 인생이 시작됐다는 윌라 캐더의 말을 새기며, 내 가장 사소한 기억들을 더듬는다. 가장 쉬운 것부터, 가장 가까운 것부터, 할 수 있는 만큼 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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