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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헬 Nov 03. 2021

출산의 기억


율들의 생일이 다가온다. 둘은 2년 터울을 두고 11월, 12월에 정확히 한 달 차이로 태어났다.

쌍춘년 1월에 결혼해서 11월에 태어날 황금 돼지띠 아이를 기다리며, 임신 중에는 입덧하면서 서울서 대학원 다니면서 직장 다니면서 주말부부하면서, 출산만 기다렸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세 식구만 있는 포항에 가서 그림 같은 생활을 하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출산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온몸이 그만큼 아프고 벌어지고 찢어지는 경험은 절대 우아하지 않았고, 자연주의 출산과 육아를 꿈꾸며 조산원을 오가면서  달을 보냈는데 그렇게 하늘만 아니라  세상이 시꺼메질  알았으면 당연히 처음부터 무통분만이란  했을 테다.


큰율은 11월 29일 저녁 8시 무렵, 작은율은 12월 29일 아침 8시 무렵 태어났다.

둘을 낳고, 나는 출산의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48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출산과 모성애를 미화하는 모든 말에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데 다시 출산을 한 기분이다.


작년 이맘때 다시 출판 번역을 꿈꾸며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올해 시작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기획서가 검토서로 샘플로 번역으로 연결되는 동안 평생 그 어느 때보다 더 떨었던 것 같다.

간절했지만, 왜 간절하고 어떻게 간절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떨고 불안해하며 열 달을 보냈던 거다.

어쨌든 올해 그렇게 세 번째 책의 번역이 끝나가는 중이다.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시작 이상을 하긴 했다.


지난주에 올해 첫 번째로 번역한 책의 역자 교정을 끝냈는데, 오늘 벌써 인쇄가 끝났다고 한다. 모양새를 갖추고 서점 사이트에 올라온  결과물을 보니,

갑자기 온몸이 아프다. 몸에 아이를 가졌을 때처럼 지난 열 달 내내 속에 뭔가를 갖고 있었던 기분이다.


맘껏 기뻐해야 하는데, 가슴으로 한 열 달의 진통이 갑자기 사무쳐서 14년, 12년 전 그 불면의 시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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