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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나 May 17. 2023

[산티아고 6] 내 소중한 초코바를 빼앗아간 그 남자

#나의 첫 번째 까미노 이야기

아침이 밝았다. 55번 알베르게의 조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첫 난코스를 걷는다. 27km이지만 산티아고순례길 여정 중 가장 난이도가 상인 코스. 어떻게 스타트를 이렇게 끊을 수가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가방과 등산화 시차적응도 안된 내 몸컨디션. 등산을 즐겨하지 않는 나에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안녕하세요 로사나님 준비는 다 되셨죠? 이제 가시죠'

'운동화 끈 튼튼하게 메야해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정말 웃기지만 '안녕하세요'인사와 함께 '안녕히가세요'를 바로 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2018년도의 '나'는 회피형, 불안형이었기 때문에 중년 남성 두 분은 당연히 나를 두고 먼저 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남성 두 분만의 속도와 일정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의 만남은 잠깐의 피자타임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걸으면서 가방을 제대로 메는 법, 등산스틱을 사용하는 방법, 발을 휴식하는 방법 심지어 도착하게 될 론세스바예스 숙박정보까지 나에게 끊임없는 까미노 꿀팁을 전수해 주셨다.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이렇게 잘해주시지? 내가 이런 호의를 받아도 되나?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온갖 잡생각이 들었지만, 걷는 게 힘들어서 잡생각은 바로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걷다가 만난 새로운 한국인 또래 친구가 생겼다. 나보다 2살 어린 23살이었던 친구는 가볍게 걸으며 

아버지가 보내주셔서 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발걸음도 빨랐고 민첩했다. 그 친구는 중년의 남성 두 분의 속도와 잘 맞았고 나는 너무 지친 나머지 자연스럽게 그 무리와 헤어졌다. 


정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그늘이 있고, 기다린 통나무가 있는 쉼터가 보였다. 잠시 통나무에 앉아있던 그때. 태극기를 달고 걷는 한 남자가 열심히 뚜벅뚜벅 걸어왔다. 인사는 그냥 하기 싫었다. 지쳐서 말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도 많이 지쳐 보여 왠지 말을 걸어주고 싶어졌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초코바 있으세요???'


태극기 청년은 다짜고짜 나에게 초코바나 간식이 있는지 물어봤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 말이 간식여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힘들 경우를 대비해 쟁여둔 1개의 초코바를 그에게 건넸다. 건네기를 망설이기에는 그의 눈이 살짝 풀려있었다.


초코바를 허겁지겁 먹은 그는 '감사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올라와서 탈진이 올 지경이었거든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일했던 그는 스스로를 너무 믿은 나머지 식사를 거르고 왔다고 했다. 후에는 본인의 행동에 후회됐고 초코바 덕분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내 소중한 초코바. 유일하게 남은 초코바를 그는 가져갔다. 하지만 초코바를 먹고 그의 표정과 발걸음,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그리고 다시 씩씩하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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