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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Nov 17. 2022

문득 도착한 어느 가을날의 편지

2022년 가을의 나에게, 2021년 가을의 나로부터.

 2021년 10월 6일, 구독하던 뉴스레터에서 '가을 우체통' 이벤트를 준비했더라. 1년 뒤 나에게 편지를 적어 보내면 1년 후인 오늘, 2022년 10월 6일 이메일에 담아 보내주는 이벤트였다. 그래서 냉큼 참여했었는데, 그 뉴스레터는 어느 순간 발송을 멈췄고 내게 쓴 편지도 당연히 잊고 있었다.


 그렇게 더이상 오지 않는 뉴스레터도, 내게 쓴 편지도 까맣게 잊고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2022년 11월의 중간인 오늘. 냅다 모아서 쌓기만 하느라 먼지가 잔뜩 쌓인 것처럼 보이는ㅡ노션에 저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먼지가 쌓이지는 않는다ㅡ 글감 목록을 정리하던 중에 이 편지를 발견했다.


 잊고 있던 일기장을 찾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쓴 편지이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정말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 김에 공개해 보는 to me - frome me 편지.


▶ 2022년의 답장은 가을 끝자락에 마음을 담아(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부터는 2021년 한 살 어린 내가 한 살 많은 나에게 쓴 편지 전문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잔뜩 소란스러운 마음에게, 그러니까 나에게.


 2021년 9월에는 가을이 조금 늦게 도착했어.

여름이 미련을 부리는지, 하늘은 가을인데 날씨는 따갑더라고.

원래 가을볕이 뜨겁다고는 하지만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의 날씨였으니 말 다했지.

그렇게 밍기적거리는 계절이 내 마음에는 단숨에 도착한 건지 요즘 영 싱숭생숭해.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참 싫어해서, 안 좋은 면은 고치려고 노력하잖아 나름.

그럼에도 가을을 타는 건, 솔직히 모든 계절을 다 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가을에 유난히 외로워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야.


 가을밤 공기는 예상보다 더 시려서, 지난 우울과 이유 모를 외로움에 깊게 잠겨 버리곤 해.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단 두 가지,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의문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그게 고민에서 끝이 아니라, 결론을 내고 행동에 이르러야 하는데...

왜 늘 생각에 얽혀 마음고생만 잔뜩 하다가 회피해 버리고 마는지-.

올 한 해가 지기 전에 그 생각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 고민은 어째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할 생각 같기도 해서 그게 또다시 걱정이야.


 잠시 열심히 살다가, 번아웃으로 꽤 오래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쓸모없이 늘어져 있다가...

그런 스스로가 한심해 채찍질을 하고 무리해서 일으키고, 또 번아웃이 오기를 반복하지.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이런 순환을 수긍하겠지만, 이제는 좀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싶어.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려고. 책도 많이 읽고,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야.

그러니까 이 편지의 수신인인 너는 발신자인 나보다 훨씬 더 멋진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라.

사람 하루아침에 변하는 거 아니라지만, 이런 막연한 기대 정도는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만약 멋진 어른이 되어있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것들로 괴로워하고 똑같은 삶을 살고 있대도,

그래도 괜찮아. 괜찮다고 꼭 너한테 말해주고 싶어.


 인생의 타이밍은 저마다 다르고, 전성기도 저마다 다르다잖아.

그리고 여러 점괘에서 말년으로 갈수록 더 잘 풀리고 잘될 거라잖아.

그러니까 운명론을 조금 더 믿어보자, 할 수 있어. 분명 잘 될 거야!

지금 조금 힘든 건, 나중에 더 빛나기 위해 미리 겪는 괴로움일 거야.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고, 돌아보면 항상 최선이었던 것처럼 지금도 잘 해내고 있는 거야!

언제나 정답은 아니더라도 내 결에 맞는 답을 찾아왔으니까.

지금 살고 있는 방법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또 내 삶을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믿어.


 이번 가을은 '그' 때문에 조금 더 괴롭다. 이제는 묻어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나름 "나아지고 있어", "흐려지고 있어" 싶었는데... 벌써 훌쩍 지난 옛 시간에 여전히 미련을 두고 있어.

브라운 아이즈 노래를 리메이크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벌써 일 년"을 들으면서 씁쓸해하는 중인데.

그래도 여기서 1년이나 더 지난 뒤의 너는, 그러니까 나는 그를 홀가분하게 털어냈을까?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까? 하다 못해 운명이라면 '그'와 다시 만났을 수도 있고 말이야.

부분 운명론자잖아 우리는. 그러니까 이 또한 운명에 맡겨보자.


 나는 이제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려고. 그리운만큼 그리워하고, 남은 미련만큼 힘들어하려고 해.

아낌없이 사랑한 시간과 좋았던 추억에 대한 값이라면 그저 그 대가를 치르려고.

그러니까 너는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미련을 덜어냈기를 바라.


 줄줄 쓰다 보니 이 정도인데, 물론 하고 싶은 말은 셀 수 없이 남았지만 이쯤에서 끊어보려고 해.

왜냐하면 굳이 다 적지 않아도 나는 네가 너의 지금을 잘 살아내고 있으리라 믿거든.

무너질 때마다 스스로를 잘 다독여 일어났잖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나기도 했고.

그만큼 좋은 사람들 틈에서 행복하게 너를 찾고 있으니까... 삶이라는 여행이 늘 비극만은 아님을 잊지 말자.


많이 사랑해, 네 웃는 얼굴도, 그림자도, 그리고 눈물마저도.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금부터,

네가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지금까지,

충분히 수고했어 :-)


(Oct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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