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평화 속에 엎드린 화근(平和! 禍之所伏)
곤륜산으로부터 뿜어 나온 세찬 눈보라가 세상을 삼킬 듯 불어대는 깊은 겨울밤. 얼음과 모래가 섞인 빙하 위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들은 사람이 사는 동쪽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서쪽으로 바람을 안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 길을 나선 듯 몹시 초췌한 몰골들을 한 이들은 흡사 반송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도중에 누군가 쓰러져도 버려둔 채, 오직 한 곳을 향해 걷는 이들의 목적지는 황천 무저갱이었다.
공손 헌원(公孫 軒轅)! 그는 매우 총명하고 민첩한 젊은이로, 중원삼공(中原三公)의 영수(領袖), 상태공(上台公) 공손소전(公孫少典)의 아들이다. 남 부러울 것 없던 그가 혹한의 날씨에 세상의 끝을 헤매고 있다.
조금 전 풀썩 쓰러진 노인은, 풀로 만든 인형처럼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보라 중간에 잠깐 나온 창백한 달빛에 비친 노인의 얼굴! 상태공(上台公) 공손소전(公孫少典)이 아닌가! 더욱이 그가 찬 바닥에 쓰려졌는데도 아무도 그를 부축하지 않고 모두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빙하 위에 쓰러진 공손소전의 몸은 차게 식어갔고, 눈빛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같은 시각 공손헌원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황천 무저갱을 향한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대문 사진 : 공손 소전(公孫少典) ; (출처 : https://me2.kr/eUMbU 검색일 : 2023.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