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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13. 2020

추천 리뷰6) 트로피코

이 게임이 저에겐 인생이고 운명입니다


꼭 한번 굉장히 편파적으로 트로피코를 추천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롤러코스터/주타이쿤/심즈/심시티/문명과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수능 끝나고 일주일 내내 심즈만 하다가 엄마한테 좀 나가 놀기라도 하라며 등짝 맞은 경험이 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지금 얘 집에 보내면 사랑나누기 못한다고! 라며 강하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컴퓨터도 컴퓨터책상도 컴퓨터의자도 다 엄마가 사준거라서 얌전히 옷입고 집밖으로 나섰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중학교 때 롤러코스터 타이쿤에 미쳐있지 않았더라면 게임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심즈를 알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커스텀 스킨에 환장해 네이버와 다음 카페를 헤메다가 마비노기라는 게임을 알게 될 일도, PC방 프리미엄 회원이 되어 현생을 갖다바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랬다면 인싸로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내게 어느날 트로피코가 찾아왔다.






트로피코는 현재 6편까지 출시됐고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 등 게임 판매 플랫폼에서는 할인 행사를 할 때마다 트로피코5 혹은 컴플리트 에디션을 거의 최소 60~80% 할인 가격으로 끼워넣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다. 트로피코는 언제나 어려분 곁에 있습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이렇게 풍비박산난다(자연재해 횟수 조절가능)



다른 경영 시뮬레이션처럼, 트로피코도 하나의 도시를 잘 운영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관이 남미 독재정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우선 강대국의 식민지 하나를 받아 산업 기반을 다져가는데, 도시가 좀 발전하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 와중에 세계대전도 같이 일어나 미국이나 러시아 중 어디에 붙을 건지, 중립국으로 갈 건지 전면전을 할 건지도 선택이 가능하다.



내가 심시티나 문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목적이 없어서다. 목적이 왜 없어 도시를 만드는게 목적인데. 그러니까 그 목적이 뭐냐고. 나는 가상의 신이 되기보다 임진록(...)이나 삼국지처럼 특정 인물이라는 설정이 있는게 좋다.



트로피코는 그런 점에서 지루하질 않았다.식민지를 발전시키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수익이 많이 남는 사업을 택해야 하는데 또 국민들이 너무 빈곤하거나 교육을 못 받으면 일할 사람이 없고 내수가 안 돌아가니 복지 정책도 적절히 해 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역과 외교 버프도 중요하다. 그렇게 여러 저울의 평행추를 조금씩 맞춰 나가면서 발전을 이루는 게임이다.






국민 수가 많아야 노동력이 많아지니 이주민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일자리를 위해서는 재정이 요구되는데 재정적자가 너무 심하면 사회 불안이 커진다.



또 국민들은 산업발전보다 환경을 생각하라는 환경주의자들, 부의 분배를 먼저 해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종교주의자들 등 정치적 성향이 각기 달라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정책을 택하고 적절한 지지도를 받아야 한다. 지지율 50%를 넘지 못하면 게임오버가 되기 때문.



지지율은 투표로 결정되는데 투표해도 질 것 같으면 투표를 금지하면 된다. 근데 그러면 사회불만이 높아지고 반란군이 공장을 부숴버리고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하고 재정적자가 늘어나 다시 지지율이 하락...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호관계가 악순환이 될지 혹은 선순환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플레이어가 된다.





뻑뻑해진 눈을 비벼가며 생각했다. 세상엔 왜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이 많을까? 도대체 누가 나한테 게임 같은 걸 알려준 거지? 현생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다면 좋았을걸...



하지만 난 치열했었다. 2년만에 놀이공원 만족도 800을 달성하기 위해 밤을 샜으며, 자수성가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 방 2칸에서 8식구의 심을 밀어넣고 키우기도 했었다. 메인스토리 완료를 위해 던바튼에서 꿋꿋이 파티원을 구했었고, 원소로 삼국통일을 해 보겠다며 제갈량 영입에 겁없이 뛰어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깨달았다. 게임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게임을 찾아냈던 것이다. 롤코타를 안했다면 심즈가, 심즈를 피했다면 문명이, DS와 플스와 엑박의 수많은 타이틀들이 운명처럼 나와 조우했을 것이다. 선천적인 나의 오감이 이쪽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게임의 존재를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걷는 방법을 익히듯이 자연스럽게 놀거리를 찾아내고 치열하게 나 자신과의 승부에 뛰어들었을 거다.



그리고 영원히 인싸가 될 수 없는 운명 속으로... 잠깐 눈물 좀 닦고 다시 쓰겠다.



대충살자 트로피코 해변에서 방황하는 거북이들처럼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표현을 좋게 해석하고 싶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본질을 갖고 있는 거다. 홀씨라면 민들레가 되고 애벌레는 나비로 클 것이다. 우리는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바깥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자극을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길과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의 것이므로 서로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때로 나는 나 자신에게 서슴없이 비난을 퍼붓는다.



왜 너는 잘못된 줄 알면서도 변하지 않느냐고. 그러지 말자. 스스로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는 말자. 우리도, 이게 좀 아닌 것 같다 싶으면 고칠 줄 안다. 다만 변화의 형태와 결과, 소요되는 시간이 각자 다를 뿐이다.



롤러코스터 만드는 게임 얘기를 하다가 왜 이렇게까지 삼천포로 와버린 거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나만의 방법이라 말하겠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궤변으로 잘 포장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나 자신을 지켜왔기 때문에 트로피코와 내가 기적처럼 만난 것 아니겠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었다는 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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