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행복론 - 행복에 관하여

행복을 가져오는 생각

by 닥터 온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다. 그때 막 윈도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어서 나도 컴퓨터 학원에서 한컴 오피스 다루는 법을 배웠다. 어린 마음에 집에 와서 '나도 컴퓨터로 글을 써야지~'하고 처음 쓴 글이 이것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참으로 중2병 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때 사춘기도 아니었고, 나름 진지하게 이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 글을 썼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대견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글은 소실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으니 그때 내가 쓴 인간이 사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생각이 더 많아져서 인간이 사는 이유에 대해 써보라고 하면 쉽게 답하지 못하겠지만, 초등학생인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실로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법 한 존재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인가? 어떨 때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각하곤 한다.


아 저 부자처럼 돈이 많으면 행복할 텐데...

저 여자처럼 예쁘면 정말 행복하겠다.


어떤 상태에 이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나의 목표를 성취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진리의 경지에 이르면 행복하지 않을까?


허나 나는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시간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인간이기에 결국 우리의 행복은 상태의 절댓값이 아닌 상태의 델타 값(변화량)에 의해 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이다.

실로 그러하지 않을까? 백억을 가진 부자는 천억을 가진 부자를 부러워한다. 아름다운 이는 더 아름다워지고자 하며, 그것을 이루어 나갈 때 행복을 느낀다. 구독자 백명의 브런치 작가는 구독자가 천명이 되면 더 행복해진다. 어쨌건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태의 변화를 인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상태의 변화량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런 행복을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더 나은 곳을 보며 불평할 것인가

더 못한 곳을 보며 감사할 것인가

혹은 더 높은 곳을 보며 소망할 것인가

더 낮은 곳을 보며 안주할 것인가

보는 잣대에 행복은 달려있다.


때는 바야흐로 본과 1학년 1학기 4월…. 의과대학 본과 1학년부터 확 어려워지고 방대해지는 교과 과정 때문에 한 학기에 30학점 가량의 학점을 이수하던 때였다. 당연히 시간표는 고등학생의 그것을 방불케 했고 매일매일 야자 아닌 야자를 또 해야만 했다.


본과 1학년의 1학기는 대학생들의 그것과 달리 개강이 2월이기 때문에 개강한 지 2개월 무렵이 지난 때였다.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강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도서관에 앉았는데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다. 마침 공부하기 전에 코멘트를 적는 공책이 있어 거기에다 끄적였던 글이다.


당시의 나는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삶을 보는 시각의 기준을 바꿔보면 난 행복한 사람이었다. 비록 공부에 치여 살고 있지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고, 나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려움 없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지 않은가? 건강한 육체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장점들을 생각해 보고, 기준을 낮춰보니 나의 삶은 꽤 만족스러운 것이 되어있었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내가 그때의 삶에 마냥 안주하였다면 나는 공부를 할 원동력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재의 나에게는 감사했지만, 더 높은 곳을 소망했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결국, 현재의 나의 위치를 볼 때는 기준을 낮춰서, 미래의 목표의 나를 볼 때는 기준을 높여서 생각하는 방법이 유효하다. 바꿀 수 없는 현재를 위해선 눈높이를 낮게, 바꿀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선 눈높이를 높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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