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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Dec 14. 2023

어쩌다 악수가, 성희롱?

성희롱 말고 정상적인 악수를 하라

우리 사회에서 악수는 화해와 친근감의 표시, 반가움과 인사 등 사교적인 용도로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동성끼리 하는 악수가 그렇다.


이성간에 악수를 하게 되면 특히 남성들은 온갖 기발한 방법으로 성적의사를 표현한다. 손가락으로 상대의 손바닥을 긁어대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형태요, 주물럭거리며 야한 성적 농담까지 지껄인다. 또 어떤 작자는 손을 놓지 않고 압력을 가한다. 동성에게는 하지 않는 행동이다.

때로 자신의 행동을 위장하기 위하여 자신은 원래 그런사람이라는 듯이 동성에게도 하는 경우를 보기는 하였다. -물론 이때도 내게 먼저 그딴 저질 행동을 한 연후에 내가 불쾌해 하니까 나에게 보란듯이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듯이 내게 했던 행동을 똑같이 하였다. 명확하게 이는 위장행동이다.


이 사실은 남성인 동성들끼리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남성끼리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더라도 그 정도나 의도가 아주 다를 것이다.   남성이 아는 남성과, 여성이 아는 남성 사이에는 현격한 거리가 존재한다. 남성들끼리 너무나 좋은 친구일지라도 여성에게는 악마와 같은 남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대방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신의 성적의사가 중요할 뿐이다. 성적 매력을 느낀다면서 그 감정만을 내세워 상대를 능욕하고 농락한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성과 악수를 하면서 동료라 느끼는지 묻고 싶다. <절대로 아닐 것이다>에 백만금을 건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여긴다.  그들은 부지불식간에도 온갖 기발한 행동으로 상대를 놀래키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성적의도를 드러낸다. 그들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성희롱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것도 위장행동이다.


왜 그들은 악수를 하면서도 성희롱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내 기억에 30%, 거의 그 정도쯤은 성희롱을 하는 것 같은데...


게다가 정상적으로 악수하는 경우보다 불쾌한 악수의 경험은 훨씬 오래 기억된다. 그야말로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간다. 더럽다. 욕 나온다. ㅅㅂ, ㄱㅅㄲ


물론 멋진 이성을 보고 호감 가는 경우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존중해서 자신의 의사를 정중하게 표현할 것이지, 왜 성희롱을 하는가? 그것은 상대를 그저 성적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한다면 나타날 수 없는 행동이다.


<사랑>은 정성이 들어가야한다. 소설 <위대한 캣츠비>에서도 캣츠비는 사랑의 완성을 위해 온 정성을 쏟는다. 전 인생을 건다. 그렇다. 이렇듯 진실한 사랑은 지극한 정성으로 이루어 진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대하다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은 없고 그저 즐기고자 하는 다급한 마음은 성희롱을 통해 쉽게 의사를 표현한다. 본래 악수의 의미를 넘어서 성희롱, 성추행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여성과 악수하지 않으려는 남성도 있다. 이는 여성을 인격체 또는 동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대상으로 보아,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자신이 통제못하는 상황을 미리 차단하여 기피하는 현상이다. 이는 차별이라 하겠다


사랑한다면 악수 하나로 상대를 농락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더욱 애지중지하며 사랑을 키워가야 한다. 

쉽게 소비하고 필요없으면 버리는 일회용 사회에서 악수마저 쉽게 소비되는 현장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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