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마음 문이
헤어져도 아직 튼튼하다니
오래된 성터에서
성이 무너졌다고
진 것이 아니구나
삶이 허물어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구나
사랑이 끝났다고
모두 이별이 아니구나
무너진 성터에 걸터앉아
성벽 조각, 흩어진 벽돌을 어룬다
허공을 떠돌아다니던
마음 조각을 만진다
인생이 공전하는
실패의 늪에서
폐허를 지키는 문도
이리 튼튼할 수가 있다니
오늘, 흰 눈 속에서 당나귀처럼
겅중거리며 큰 귀를 세우고
오래된 고향처럼
너의 상처 맑게 닦아 본다
-시인시대 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