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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에스 May 20. 2021

늘 예상대로 되는 일은 없다.

나의 출산 히스토리

엄청난 힘으로 꿀렁이는 배를 부여잡고 앉아 있다가 거실을 서성이길 반복했다.

조금 태동이 잦아들자 무거운 몸을 침대에 뉘었다.

그마저도 아주 잠깐 꿈을 꾼듯한 시간이 지나고 속옷이 젖는 듯한 익숙한 듯 낯선 느낌에 잠이 깼다.




화장실에 갔다가 너무 놀라서 남편을 부른다.

“이걸 이슬이라고 해야 해? 출혈이라고 해야 해?”

생각보다 많은 양의 출혈이 있었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도 나도 아이를 만날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병실 침대도 침구도 불편할 거라며 개인 침구까지 챙겨 나왔다. 나는 착각 속에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르봐이예 분만으로 몇 번 힘주면 쉽게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다음날 아침 유도분만이 예약되어 있었기에 아침까지 자연진통이 오기를 기다려봤지만 전혀 진통이 시작이 되지 않아 유도를 좀 일찍 시작했고, 곧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 정말 이제 아기를 곧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아프지만 조금만 참아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근데 한 시간, 두 시간 흐르자 누워있는 병실 천장이 흐려지며 정신을 못 차리게 아픈 고통이 계속되었고 15시간을 넘기도록 자궁문이 열리지를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그것만은 아니길 우려했던 말씀을 하셨다. 다음날 다시 유도를 해보자고...

수술할게 아니라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이 아픈걸 내일 또 해야 된다고? 차라리 날 죽여줘.'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진통하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모성애란, 그리고 엄마란 이런 거라고... 숨죽여 진통을 견디며 아이를 탄생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모성 애고 뭐고 나는 죽을 것만 같았고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몸이 버티지를 못한 건지 결국 다음날까지 버티지 못하고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은 부들부들 떨리며 춥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런 아픔과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해열제를 맞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아이까지 심박이 떨어지며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선택의 여지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고,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와중에도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이제 와서 수술을 한다고?" 남편한테 짜증을 내며 울고 불고 했지만 결국 선생님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엄마가 애를 생각해야지 지금 애가 위험하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자연분만에 목숨을 걸었을까?

대놓고 말할 수 없었지만, 사실 이유가 있는 고집이긴 했다. 시어머니도 아닌 시 할머님의 말씀 한마디가 계속 생각이 났기 때문인데, '수술로 태어난 아이는 사납다.'도대체 어디서 근거한 말일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무서운 말이다.

결국 나는 수술로 아이를 출산했고, 아이는 건강하고 예뻤다.

그냥 듣고 흘렸어도 되는 말들로 나는 나 자신을 옥죄고 가두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 모유수유는 꼭 해야 한다.......

결국 이 중에서 해낸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모유수유였다.



수술 후 아이는 괜찮았지만 나에게는 또다시 문제가 생겼고, 2주 넘게 고열이 지속되었으며 염증성이라는 말뿐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어떤 항생제를 맞아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술부위에서는 염증성 고름이 새어 나왔다. 아이를 안아보기는 커녕 이틀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고, 그래도 모유수유는 해보겠다고 3일 째부터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링거를 두 개나 달고 수유실을 들락거렸다. 모두가 쳐다보고 안쓰러워했지만 모유수유만은 해야 했다.

남들은 순풍순풍 잘만 낳던데, 왜 나는 자연분만도 못하고 출산 후 몸까지 아픈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속상하고 눈물이 흘러 입원 2주 동안 괴롭고 힘들었다.




아이 출산 후 몇 시간 뒤 바로 시부모님과 시 할머님, 아가씨까지 병실에 오셨다.

1박 2일 출산 코스를 끝마치고 머리는 절었고 얼굴은 엉망이며 울어서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얼른 누운 상태로 거울을 봤다. 가족들이 모두 열이 나서 아픈 나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시 할머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시어머님이 할머님을 툭툭 치시며 말씀하시지 말라고 하는 것 보니 왜 자분 안 하고 수술했냐는 말씀을 하시려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분이니 그럴 수 있었겠지 싶지만 그 날은 정말 울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던 기억이 나 지금도 속상하고 눈물이 고인다.






그다음 날 엄마가 병실에 와서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부울 수가 있느냐며 나를 보고 눈시울을 붉혔고, 엄마의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매일같이 병실에 와서 곰발처럼 부어있는 내 발목을 주물러주고 가셨고, 남편은 엄마도 해주기 힘든 화장실 수발까지 들어주며 정성껏 2주 동안 돌봐주었다.

2주 동안에도 열은 수시로 올랐다 다시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수유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거의 포기상태였고, 다른 엄마들이 쭉쭉 젖을 먹일 때 아이가 젖을 물고 잠든 모습만을 바라보다가 병실에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조리원에 빨리 넘어가서 조리원 천국을 맛보고 싶었지만 내 몸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았다.

너무 수액을 많이 맞아 체중은 아이를 낳고 열흘이 넘도록 낳으러 왔을 때보다 6킬로가 더 늘은 상태로 늘어있었다.





이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임신과 출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 두 가지를 다 겪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엔 그 모두 다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은 마음이다.

내가 정해놓은 틀과 한계 안에서 늘 좌절했고, 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자연임신

아들 임신

자연분만

모유수유




내가 이 중에서 결국 내 힘으로 해낸 것은 모유수유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자연임신과 자연분만은 의학의 힘을 빌려 시험관 임신과 제왕절개 수술로 그래도 결국 엄마가 되었다. 언제나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정해놓고, 누군가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늘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실 아직도 아들 출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가 원하고 바란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이뤄줄 수 없음을.





둘째를 기다리며 내가  글을  이유는 혹여  상처 받을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인데, 시댁행사에 가면 종종 남편이 장손이라는 이유로 시부모님은 내색하지 않으시지만 다른 어른들이 둘째 얼른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둘째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이야기를 하는데, 앞으로 정말 둘째를 임신했을  성별에 대한  마음을 정말 확고하게 가지고 흔들림이 없어야 그때도 상처 받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지킬  있을  같아서다. 물론 한마디라도 말씀 해주시려고 그저 큰 의미없이 하신 말씀이라는걸 알지만, 넘겨짚게 되는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수많은 어른들이 아직도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나는 그저 20세기 어른들의 며느리이며 조카며느리일 뿐이니까. 이제는 말도 안되는 며느리의 의무에서 벗어나려 한다. 미래의  둘째 아가야. 건강하게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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