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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일라 Oct 15. 2022

"이쪽은 내 룸메이트, 클로에야"

그리고 내 부인이기도 하지

한 번도 여자를 만나본 적 없던 전형적인, 어쩌면 다소 보수적인 한국 여성이던 나는 아직도 나의 연인관계를 숨기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엄연히 따지자면 우린 이제 결혼한 사이니까, '부부'관계라고 해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숨길 관계인데 이제와 구태여 이 관계가 연인인지 부부인지는 이미 상관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굳이 따지는 것도 서글프다는 생각을 하던 차,

그녀의 지인이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네 온다.


이 사람의 룸메이트로써

그녀와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깔끔해 보이는 그녀가 실은 얼마나 청소를 안 하는지,

짓궂고 건조한 농담들로 적당히 친구로서의 관계를 보여주고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한 공간에 같이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나 눈빛, 익숙한 행동 때문에 눈치가 빠른 사람은 종종 우리 관계를 눈치채고는 한다. 우리는 여자이지만 여자를 좋아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인 서로를 사랑하는 레즈비언이고,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일(동성애)을 은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추리소설의 결말을 맞추는 일처럼 스릴 넘치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에게까지 우리 관계를 오픈할지,

어떤 경우에는 우리 관계를 숨길 것인지,

우리는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아주 진지한 작전회의를 갖는다. 입에 배어있는 호칭을 조심하자던지, 신체적 접촉을 신경 써서 줄이자던지, 너무 둘만 붙어있지 말자던지 등등.

각종 프로토콜을 정하고 그에 맞춰서 일사불란하고 치밀하게 움직이기로 약속한다.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낯선 나를 소개하는 여러 타이틀 -  


"룸메이트", "사촌동생", "친구", "동기"


때로는 그녀의 룸메이트가 되기도 하고, 사촌동생이 되기도 하고. 그녀의 학교 동창, 회사 동료가 되어보기도 한다. 서글서글한 인상이 비슷한 탓인지 외국인 친구들은 우리가 자매 사이인지 먼저 물어오기도 한다. 내가 그녀의 '무엇'이든, 그에 맞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내는 것은 한편으론 학생 때 하던 연극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뭐 어차피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주어진 상황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며 살지 않나.


처음에는 내가 그 사람의 '배우자' 혹은 '연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될 수 없다는 사실이 마냥 한스럽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설움이 이런 거였다니- 뒤늦게서야 홍길동씨의 슬픔을 크게 통감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주는 이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호칭이란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니, 나도 나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면 그뿐.

점점 둔감해지는 방법을 익혀가나 보다.


그럼에도,

그래도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내가 그 사람의 부인이고, 그 사람이 내 부인이라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서로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문득 스쳐 지나가면서


그렇게 그녀의 룸메이트로써의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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