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남기 위한 고민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김영사) ●●●●●●●●○○

by 눈시울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마이클 샌델의 책이 이렇게 큰 반향을 가져다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버드 최고 명강의(최고 명강의가 수십개는 되는 듯 싶지만^^;)라는 네임밸류, 출간 당시의 국내의 정치 상황, 첨예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삼고, 본격적인 철학이나 사상을 제시하기 전에 우선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만한 자극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방식 등 이 책은 저자와 출판사의 탁월한 판매전략이 고루고루 들어맞은 책이었고, 그 결과 한국에서만 200만부 넘게 팔리고 지금까지도 순위권에 들어가는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너무 개인 취향에만 쏠려 있는 독서편향을 고치려고 베스트셀러를 읽어보자는 목적이었으니까. ^^;;;;


. 샌델은 우선 누구나 잘 아는 이슈에 대해, 누구나 부담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가령 이 책의 처음은 '초대형 폭풍이 불어닥쳐 큰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물자나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가는 게 합당한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정도라면 누구나 즉시 예 / 아니오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폭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격이 그대로라면 누가 거기까지 들어가서 물자나 서비스를 제공하겠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샌델은 이 질문을 가지고 공리주의와 개인의 권리존중, 혹은 도덕적 이상을 중시하는 사상들을 풀어내고, 개인의 권리존중을 가지고 또 한 번 자유시장주의와 평등주의를 설명한다. 여기까지 오면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일단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성이 징병제와 모병제, 대학의 학생선발, 과거사 문제 등 주제를 달리해 반복된다. 예 / 아니오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나, 롤스의 사상이 유려하게 서술된다. 낚시도 이정도면 월척인 셈이다. :)


. 물론 이 책은 미국 학교에서 이뤄진 강의이고, 그 내용 역시 미국의 상황을 가지고 풀어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읽기 위해선 한 번 더 책의 내용을 생각해야 한다. 사실 이 강의 자체가 토론수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직접 토론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챕터 안에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과 주장과 반론이 있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책이니까, 하버드 교수니까 하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게 아니라,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을 끊임없이 반론해야 하는 것이다.

. 실제 책 내용 중 대학의 소수집단 우대나 기여입학제의 경우 우리 역시도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제도이며, 실제 소수전형으로 선발되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대학의 권리라기보다는 평등을 위한 장치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권력자 자녀의 부정입학 건이 지금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이슈이며 수시냐 정시냐가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는 상황에서 이 책의 '대학은 자신들의 목표에 맞는 선발할 권리가 있다'라는 부분까지 가면 사학에 그런 권리를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 더욱이 롤즈의 평등원칙 이야기에서 나오듯, 현재 미국이나 한국사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평등은 결과를 차등적으로 분배하자는 것 자체는 인정하지만, 노력과 경쟁 그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수저론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수저론은 노력의 댓가를 가로막는 태생적인 한계에 대한 비판이지 노력의 결과물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존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 김연아나 손흥민, 유재석 같은 국민적 스타들에 대해 "그들은 그저 환경을 잘 타고 났을 뿐이고 노력에 있어 지금의 댓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면 "열폭쩐다", "어그로도 이쯤되면 저급", "잘 들었습니다. 다음 30세, 무직" 등의 악플 폭격을 받을 건 자명하지 않을까. 사실 샌델 역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설득력 있게 부연하지는 못하고 어물쩍 넘어간 느낌도 든다(가령 하버드에 온 학생들 중에 집에서 첫째인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하면서도 굳이 '재미삼아' 조사한다는 부연을 붙인다. 반론폭격을 받은 학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




학생들은 자신이 성취한 일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도덕적으로 임의의 요소들 덕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력해서 얻은 대가마저도 도덕적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정의론을 많은 사람들이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본다.


- p. 221. 평등을 강조하는 시각 : 존 롤즈




. 또한 징병/모병제를 논한 부분도 이미 모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징병제 국가인 우리로서야 모병제가 당연히 선진적이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는 정책 정도로 인식되어 있지만, 정작 반세기 정도 모병제를 시행해 본 미국에서는 모병제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 크다. 그들이 보는 모병제의 본질은 돈 있는 이들이 돈 없는 이들에게 돈을 주고 생명의 위험을 떠맡기는 일이며, 징병제는 법으로 징집을 강제하고 모병제는 돈으로 징집을 강제하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모병제가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처럼 언제든 대규모 전쟁이 터질 수 있는 나라에서,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뀐다면 안전한 곳에서 '내가 싸우라고 세금을 냈으니까', '누가 칼들고 모병 응하라고 협박했냐(....)' 등의 강경론을 외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이와 함께 칸트의 사상으로 읽는 대리모나 성매매, 자살 이슈도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면, 성매매나 자살은 모두 이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보통 이에 대한 논쟁에선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가 나라는 주장이 진보적인 정론처럼 여겨지지만, 샌델은 칸트의 정언명령을 꺼내면서 '내 안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처분할 권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존중받아야 할 존재다. 그게 타인이든 자신이든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일반적인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주장을 생각해봤을 때, 이 책을 편가르기 식으로 읽어내려왔다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 것이다.




칸트가 보기에, 자살도 같은 이유로 정언명령을 위반한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면, 나를 고통 완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듯이, 인간은 "단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 이 아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처분할 권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내게도 없다. 칸트 생각에, 자살이 잘못인 이유는 타살이 잘못인 이유와 똑같다. 사람을 물건취급하면서 그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 다 마찬가지다.

자살 예시는 칸트가 의무라고 생각한 인간 존중의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칸트에게 자기 존중과 타인 존중은 같은 원칙에서 나온다. 존중 의무는 이성을 가진 존재, 인간성을 지닌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의무다. 이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와는 관계가 없다.


- p. 172. 동기를 중시하는 시각 : 이마누엘 칸트




. 이렇듯 이 책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결국 '도덕적 이상과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자는' 내용이구나 하며 끝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저자에게 질문하고 반론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납득한 것을 인정해야지 책이니까, 하버드 교수니까, 다른 이들이 열심히 토론한 결과니까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여기에 나오는 이슈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첨예하게 찬반이 부딪히는 주제들이며 오늘도, 앞으로도 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이슈고 우리의 논쟁이라면, 구경꾼이 되기보다는 참여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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