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킬로미터 아래의 지옥불 같은 불빛으로 항공일지를 읽었다는 것은 폭격기 조종사가 자신이 일으키는 무차별 죽음과 파괴에서 단절되어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 책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평화'라는 생각을 반박하면서 시작한다. 니얼 퍼거슨은 1차대전과 2차대전 뿐 아니라 러일전쟁의 조짐이 본격화되던 1904년부터 한국전쟁이 종전한 1953년까지의 50년을 '세계 전쟁기'로 규정하는데, 실제 이 기간 동안에는 1-2차 세계대전 뿐 아니라 발칸 전쟁, 적백내전, 해방 폴란드의 주변 국가 침공, 그리스-터키 전쟁, 일본의 만주침공과 중일전쟁, 독일의 체코 병합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그와 함께 발칸반도에서의 무슬림 학살, 아르메니아 대학살, '포그롬'이라 불리는 유대인 학살, 남경대학살, 스탈린의 민족 청소 등 대규모 학살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아시아와 아프라키의 피점령지는 물론, 유럽만을 놓고 보아도 평화기 - 1차대전 - 평화기 - 2차대전 - 냉전이라는 도식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 물론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19세기만 봐도 시작부터 온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에 휩싸였고, 오스만 투르크는 19세기 내내 발칸과 흑해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그리스와 발칸 지역의 독립군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여야 했으며, 저 멀리 미국에서는 나라를 반으로 나눈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무력과 제국주의를 앞세운 유럽국가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본격적으로 갈라 가졌다.
. 그러나 20세기가 그 전의 시대와 달랐던 것은 전쟁이 대학살을 수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내내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된 것 같은 대살육의 시대가 이어졌고, 그 전까지 어느 정도 불완전하기는 했어도 나름대로 통하던 균형과 타협과 관행들은 여지없이 깨져나갔다. 그 자리를 메꾼 것은 오로지 상대가 사라져야만 없어지는 증오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하게 규정된 게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이제 민족이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죽음의 사유가 되었고 한 민족을 절멸시키는 것이 일종의 숭고한 대의처럼 인식되었다. 온갖 추상적인 개념들이 보통 사람들을 사로잡아 이득도 이유도 없이 인간성과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게 된 그 시기를, 퍼거슨은 '증오의 세기'라 부른다.
키예프의 포그롬에서도 유대인 가정과 상점에 대한 약탈은 주로 건달이나 깡패, 다양한 하층민들이 저질렀고, 이들 대부분은 10대였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룸펜 프롤레타리아 외에 노동자 계급이 포그롬에 가세했는데, 당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당원들은 바로 이들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유대인 자위조직에서 활동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오데사의 폭도 중에는 러시아 사회의 거의 모든 계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맨발의 거지 뿐 아니라 공장과 철도 노동자, 농민, 역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계급이 가담했다. 예카테리노슬라프의 포그롬 가담자들 중에는 소시민, 농민, 공장 노동자, 일용 노동자, 휴가 나온 군인,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 p. 151. 오리엔트 특급
. 무려 85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양차대전과 그 전후에 있던 전쟁과 학살사를 꼼꼼하게 짚어나간다. 50년에 걸친 '증오의 세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유대인 학살이 단순히 히틀러의 광기에 빠진 독일인들만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물론 독일의 광신적이고 비합리적인 인종 청소나 소련의 기계적이고 냉혹한 인종청소는 더없이 참혹했다. 저자는 각각에 대해 챕터 하나씩을 통째로 할애하고 있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유대인 박해는 이미 몇백년에 걸쳐 이어진 것이었고,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장서서 러시아 혁명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혁명세력에게 살육당했고 스탈린이 권력을 잡자 가장 먼저 인종청소의 표적이 되었다. 동구권의 여러 나라들 역시 히틀러 이전부터도 유대인들을 격리하고 박해했으며 히틀러가 등장하자 앞다투어 유대인들을 히틀러에게 넘기고, 때로는 '예드바브네 학살'처럼 그들 스스로가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세계대전과 연이은 냉전의 피해자로만 알려진 이들조차 증오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독일이 '최종 해결책'을 구상한 것은 확실하지만, 많은 유럽 민족들이 살육에 열렬히 동참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또한 1940년대 초기의 반유대주의 폭력은 청천벽력처럼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일부 폴란드인들이 편견에서 차별과 폭력적인 추방 (결국엔 예드바브네에서처럼) 몰살이라는 방법을 채택하기까지,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 p. 603. 살인자와 협력자
.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전쟁기는 일단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과 함께 마무리되지만, 세계전쟁기와 별개로 '증오의 세기'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직접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끝나게 되면서 많은 국가들이 유래없는 긴 평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과 그들 스스로의 전쟁, 민족청소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유럽도 유고슬라비아의 붕괴 이후 벌어진 대규모의 민족청소와 끊임없는 테러, 난민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문화대혁명과 킬링필드 등 사상의 갈등으로 인한 새로운 학살 앞에선 인종과 민족갈등, 경제적 변동성, 제국의 쇠퇴 같은 기존의 분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으니, 마치 바이러스처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진화하는 이 증오를 우리는 과연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5킬로미터 아래의 지옥불 같은 불빛으로 항공일지를 읽었다는 것은 폭격기 조종사가 자신이 일으키는 무차별 죽음과 파괴에서 단절되어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확히 이런 태도 덕분에 그 '교양 있는' 사람들은 민간인 대량 학살에 가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