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 이상향도, 아직은 멀고 또 멀었던 한 해

0년 - 이안 부루마 (글항아리) ●●●●●●●○○○

by 눈시울



정상적인 감각을 되찾으려는 욕구는 인간이 대참사에 대처하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는 인간적인 동시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 우리에게 1945년 8월의 광복이란 기쁘긴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일들을 생각해보면 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하고 되묻게 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을법한, 해방이 되면 주권을 되찾아 모두가 행복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라는 사실상 처음부터 분단되었고 좌우의 대립은 심화되었으며, 더 이상 일본에 수탈당하는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생활은 더욱 쪼들렸다. 그리고 그 석연찮은 삐걱거림은 결국 제주 4.3과, 여순반란과, 6.25로까지 이어진다. 일제치하에서 죽었던 이들의 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무너지고 말았다. 광복에서부터 6.25까지 단 5년의 기간. 그 동안에 우리가 꿈꿨던 이상향은 그 잔상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 역시 일그러져 갔다. 좌우의 대립은 남북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실제 피를 흘리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서 사람들은 증오에 사로잡히고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처벌을 받았어야 했던 이들은 그 갈라진 틈을 파고 들어와 다시 사회구성원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대립과 증오가 전쟁으로 이어지자 그들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전쟁에 적극 참여해 면죄부를 얻었다. 그렇게 '청산'은 더 이상 언급도 할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수백만이 죽었고 전쟁을 일으킨 적은 눈앞에 버젓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뒤틀린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 우리 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1945년의 종전은 희망과 행복보다는 나락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중국 역시 내전으로 치달았으며, 내전의 승자였던 공산당 정권은 '한국전쟁'과 '해방의 비극'과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인들을 비참한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베트남은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연달아 싸워야 했고,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서 해방을 이끈 영웅들은 하나같이 독재자로 변모해서 부패를 저질렀고 국민들은 불안과 가난으로 점령 당시만도 못한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유럽의 절반은 소련에 의해 철의 장막이 쳐졌으며, 이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탄압과 숙청에 의해 분쇄되었다.


.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이 책에서 다루는 종전 0년이라는 건 결국 1945년을 기점으로 더 비참해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먼 거리의 이점으로 인해 점령당하지 않았던 남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를 또 제외하고, 유럽의 절반을 제외하고 남아있는 '한줌에 불과한' 서유럽에게만 의미를 가지는 연도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들은 승리자이거나 주권을 다시 되찾고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얼마 안되는 행운아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우리가 생각해 온 것처럼 마냥 일직선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프랑스의 '과거청산'을 예로 든다. 모범적인 과거청산의 교과서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에서 부역자들은 분노한 대중들에게 여성들에게 '독일군인과 섹스했다'는 죄목을 붙여 희생양으로 내던지고 청산을 빠져나왔다. 희생양으로 지목된 여성들을 처벌하기 위해 '점령자와 동침한 이들의 모든 시민권을 박탈'하는 법이 되었고, 그 결과 종전 전에만 1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처벌 대상으로 지목되어 머리가 깎이고 옷이 벗겨진 채 조리돌림당했고, 이 과정에서 2천명이 넘는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이게 프랑스의 '청산'이었다.


. 더구나 국가적으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이송했던 폴란드, 헝가리, 리투아니아 등의 동구권에선 나치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집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종전 후에도 그 집에 계속 눌러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유대인들을 차례차례 살해하고 자신들의 재산을 안정화(!!!) 시켰다. 그로 인해 젊은 시오니스트 그룹들이 이스라엘로 이들을 이주시키기 전까지, 종전 0년에 이들이 있던 곳은 고향이 아닌 독일의 난민캠프였다. 그곳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소련 등 유럽 국가들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에 적극 찬성했다. 그들이 다시 자신들의 공동체로 돌아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일을 복잡하지 않게 만들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이주는 몇십년에 걸친 또다른 비극을 낳았다.


. 여기에 점령군과 해방자들에 의한 사적인 보복, 사회체제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기아와 굶주림, 소련이 장악한 동유럽에서 이뤄진 소수민족 및 우익세력 학살과 영국의 영향력에 들어간 그리스에서의 좌익세력 학살 등 이 책에서의 '0년'은 유럽에서조차 뒤틀리고 왜곡된 한 해로 그려지고 있다. 한 걸음 진보했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었던 세계정부 역시 처음의 취지와 변질되고 말았고, 그나마 모든 과정을 꼼꼼하고 충실하게 밟아나간 덕에 당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지루했다'고 얘기되던 뉘른베르크 재판이 진행중이지 않았다면 역사 앞에 아무것도 이야기할만한 게 없을 뻔했던, 그런 한 해였다. 우리가 광복 전에 그렸던 이상향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듯이, 종전 후의 유럽에도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거나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역사의 천사가 그 어느 것도 수습하지 못한 채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미래로 떠밀려 가듯이, 0년도 그렇게 흘러갔다. '부족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나마, 일상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막연한 한마디가,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었던 한 해였다.




전 세계의 세해 전날 풍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정상적인 감각이 전쟁 직후 기간의 끔찍했던 고통에서 벗어나, 고개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사람들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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