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향해 달려왔는지, 어디로 달려가려 하는지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김영사) ●●●●●●●●○○

by 눈시울



사피엔스는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때문에 점점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진다.



. 인류의 진화에 대해 - 다른 영장류와 인류가 왜 갈라졌는지, 같은 인류 안에서 왜 호모 사피엔스가 승리해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 이미 수백만년전부터 인류는 다른 종에 비해 큰 뇌를 가진 생물이었고, 직립보행과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이것만으로 극적인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사실 직립보행 그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2족 보행을 하면 손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은 생기지만 속도에 있어선 4족 보행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기 때문에 2족 보행이냐 4족 보행이냐는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실제 영장류 중에서는 2족 보행과 4족 보행을 병행할 수 있는 동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직립보행과 큰 뇌를 가지고 수백만년 동안 다른 육식동물들이 먹고 남은 썩은 고기와 골수를 먹는데 만족해야 했다.


. 이러한 인류의 지위가 급격하게 상승한 요인은 역시 불의 사용일 것이다. 불의 사용으로 인해 2족 보행의 치명적 단점인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고, 방어가 가능해졌다는 건 포식자를 발견하면 정신없이 도망쳐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방어수단이었던 불을 공격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주변을 경계하며 포식자가 남긴 썩은 고기를 허겁지겁 먹던 것에서 주변에 불을 지르고 불에 타 익은 동물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익힌 음식은 날음식에 비해 섭취와 소화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짧다. 그렇게 인간은 포식자를 피해가면서 먹이를 찾아 헤매다 간신히 발견한 날음식을 오랜 시간에 걸쳐 먹고 소화시키는 숙명적인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인간의 삶에는 안정과 여유가 찾아왔고, 인간은 그 여유를 고스란히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노예에게 모든 노동을 맡길 수 있었던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연이어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던 것처럼.


. 그 다음부터 인류의 발전과정에 있어 더 이상 다른 동물들은 경쟁자가 될 수 없었다. 물론 개별 동물들 중에선 여전히 인간 개개인에게 위협적인 동물들이 많았지만 그들도 전체 종으로 보자면 더 이상 인간과 경쟁할 수 없었다. 번식이 느리고 먹이로 안성맞춤인 대형 생물들부터 차례차례 인간에 의해 멸종되어갔다. 생물 종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인간에게 그 다음 경쟁대상은 같은 인류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똑같이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던 (어쩌면 신체능력은 더 위였던) 네안데르탈인에게 승리를 거둔다. 유발 하라리는 이 승리의 요인을 '인지혁명'이라 부르지만, 결국 단적으로 말해 '뒷담화를 할 수 있고,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인지혁명의 여부보다는(인지혁명이 호모 사피엔스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월한 신체능력을 뒷받침 해준 근육으로 인해 소모 칼로리가 높았기에 화산분화 등으로 인한 기후의 변수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이런 '인지혁명'이 이후 인류를 무서운 속도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건 사실이다.


. 가상의 개념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점점 더 복잡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피를 나누지 않은 남과도 민족, 종교, 신화 같은 가상의 개념을 통해 한데 묶이게 된다. 여기에 우연찮게 농경과 목축을 발견하게 되면서 공동체는 더욱 확대되었고 가속화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농경을 '특정 식물의 세력 확장 전략에 이용된 인간의 비극'이라는 시각에서 보고 있긴 하다. 식물의 목적이 번식이라고 본다면, 밀과 보리, 그리고 벼처럼 성공적으로 전세계에 번식한 식물은 없을 것이기에. 반대로 농경에 종사하게 된 개개인은 그전에 비해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며 특정 작물에 의존해야 하는 경제적 불안정을 안게 되었고, 극도로 좁혀진 생활반경에 매이며 땅을 지켜야 하는 의무까지 떠안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인류 역시도 농경을 통해 그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속도로 공동체를 확장시킬 수 있었고 발전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종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 역시도 손해본 건 없는 셈이다. :)



. 그렇게 이 책은 경제, 국가, 종교, 전쟁과 혁명 등 우리가 아는 역사를 차례차례 거쳐가며 지금에 이르는 과정을 방대한 분량을 할애해 꼼꼼하게 설명한 후, 마지막에 이르러 어떻게 생각하면 뜬금없는 사이비 같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근본적인 것 같은 화두를 차례차례 던져간다. 그래서 우리가 더 행복해졌는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 인지혁명이 있은 후 몇천몇만년 동안, 인류가 농경과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시대에서 대부분의 사회는 항상 굶주린 사람들 투성이였고, 공동체는 특정세력을 위해 그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일쑤였다. 의학과 생산 분야에서 발생한 기술의 수혜가 일반인에게까지 내려온 것은 길게 잡아야 150년 정도의 일이고, 더구나 그 150년 사이에 수억에 달하는 인구가 전쟁과 학살로 죽어갔다. 인류 뿐만이 아니다. 다른 생명체까지 그 범위에 넣는다면 그 범위는 수백억보다도 단위가 클 것이다. 그렇게 많은 생명의 희생을 딛고 올라서서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자리가 지금인 것이다. 그럼 그 위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때마침(!)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의 개발을 통해 그 선택지가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상태에서, 영생도, 인공두뇌도, 외형없는 데이터의 운명조차도 가능해진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더 원하고 - 아니 그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는 있는 것인지. 지금도 끊임없이 내닫고 있는 인류에게 던지는 저자의 질문은 묵직해서, 다시 또 내닫으려 하는 우리를 잠시 머뭇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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