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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특집리뷰칼럼,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듯했던

미스테리아 36호 - 엘릭시르

by 눈시울
미스테리아_36호.jpg


이상하지?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하지만 그렇게 해야 살 수가 있단다.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믿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너무 믿지 않으면 외로워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실수는 하지 않겠지만 그 속은 곪아가서 건강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너무 말을 많이 한다면 말이 칼이 되어 자신의 등을 찌르게 되지. 특히 이런 궁궐에서는 말이다, 누가 살고 죽는지 알 수 없다 보니 외려 더 사람을 믿게 된단다. 이상하지?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하지만 그렇게 해야 살 수가 있단다. 허허벌판에 아무런 기준이 없이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어 갈대처럼 흔들리면 안 돼. 그럴 때는 그저 누구에게건 '자기 사람'이라고 도장을 찍어두는 거야. 그러면 나중에 어떤 일이 생겨도 그가 기준이 되는 것이지. 설사 '자기 사람'이 나에게 해를 입히더라도 그를 믿어주야 해. 오히려 그 믿음이 나를 살린단다. 나중에 그가 결국 나를 배신하더라도 그동안엔 그 때문에 살게 되는 거야.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처럼 그를 의지해서 숨을 쉬는 거다. 그 부표에 몸을 너무 의지한다면 되려 바다에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 p. 252. '사라진 궁녀', 현찬양.





.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단편들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에 틀어박히길 선택한 언니가 동생이 학교에서 가져오는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김묘원의 단편과 조선 초기를 배경으로 궁궐 안에서 궁녀들 간에 오가는 괴담을 풀어내는 현찬양의 단편은 미스테리아 게재를 시작으로 지금은 모두 무난하게 시리즈화되어 순항하고 있는 매력있는 단편들이다. 특히 태종과 원경왕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라진 궁녀'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괴담을 풀어나가는 솜씨와, 옛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걸림없이 흘러가는 문장이 매력적이다. 덕분에 미스테리아 이번 호를 읽고 단편집으로 묶여 나온 '잠못드는 밤의 궁궐 기담'을 샀다. :)





'인간시장'이 자극하여 호응을 얻은 대중적 감성 역시 그런 1980년대적 폭력성, 혹은 폭력에의 무감각에 맞닿아 있다. 장총찬은 잡범들, 혹은 부유층이나 전문직 종사자, 페미니스트 '여교수' 등을 떄리고 윽박지르며 '사이다' 장면을 연출해낸다. 작가 김홍신은 자신이 시대와 불화를 겪는 22세의 선량한 영혼을 그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상대가 예측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을 통해 누군가의 정의로운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모습은 1980년대의 일반적 상황이었다. 전두환에게 경찰, 군대, 삼청교육대 같은 체계적인 조직과 기구가 있었던 반면, 장총찬에게는 본인의 두 주먹과 표창밖에 없었던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 p. 22. 대학생과 부랑아 - '인간시장'과 '어둠의 자식들', 맥락없는 폭력의 시대(노정태)





. 일제시대로부터 시작된 미스테리아의 현대사 기획은 이제 1980년대로 접어들었다. '인간시장', 조폭, 마쓰모토 세이초, 거대 담론이 끝난 자리에서 남은 이들이 느끼는 허무, 새롭게 찾아온 낯선 시대에서 뒤안길로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군사정권과 경제발전의 시대는 수십년 동안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명분으로 일사분란한 질서(줄세우기)를 요구했고, 그러한 사회에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과 강압은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권위를 대변하는 이들은 물론,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갔기 때문인지' 권위에 저항한다는 이들 역시 '강압이 수반된 질서'라는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시장'과 '서울 무지개'를 다룬 80년대의 이야기를 읽으며 민주화 이후의 35년은, 그런 논리에서 탈피하기 위한 긴 싸움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명확히 싸울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그리고 제도와 이념보다도 더 근본적인 인간 그 자체를 바꾸는 싸움인만큼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지만.





반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독자들을 자극하며 넌더리를 내게 만든 그 장치들을 하나하나 이용해 지금까지의 전개들을 역으로 깨부숴나가는, 그런 종류의 반전이다. 이 소설에 반전이 있다면 이런 식일 수밖에 없다고 납득하게 만드는 반전 말이다. 그렇기에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고, 작가가 이 순간을 위해 곳곳에 심어둔 열쇠 - 착실히 제공된 위화감 - 의 정체를 확인해가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맞춰진 퍼즐이 "논리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상식에 딱 맞지는 않다"는 반박도 보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물과 독자가 함께 움직인 판이 픽션 속의 현실이 아닌 게임임을 인지하고, 거기에 작용하는 룰이 공정하게 설계되고 수행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 p. 136. 아이자와 사코, '영매탐정 조즈카', 취미는 독서(유진)





. 이번 화의 '취미는 독서'에선 몇년 전 드라마로 나왔던 '영매탐정 조즈카 히스이'의 원작인 아이자와 사코의 '영매탐정 조즈카' 리뷰가 눈에 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정작 추리드라마는 좋아하는 배우가 고전을 영상화한 것 빼고는 그다지 보지 않는데, 그런 와중에 봤던 게 스다 마사키가 주연한 '미스테리라 하지 말지어다'와 키요하라 카야와 코시바 후카가 나온 이 영매탐정 조즈카 히스이였다(나가노 타이가가 주연한 '첫사랑의 악마'도 있었지만 추리물이라기보단 성장물이니 제외하자) 앞의 작품은 일반적인 추리물의 문법을 따라가면서도 연출에 정말 공을 많이 들여서 기존의 드라마들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속도나 방식이 확연히 달랐다는 게 좋았다면, 조즈카 히스이 쪽은 아예 이야기의 구성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게 좋았다(덕분에 딱 한 번밖에 못쓰는 방법이고, 이후의 후반 화들은 다시 원패턴으로 돌아갔지만). 리뷰를 읽어보면 소설 역시 그런 듯하니 한 번 읽어볼만할 듯. 이야기를 모른다면 당연히 매력적인 작품이고, 설령 이미 이야기를 안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과연 작가가 공정했는지 '이를 갈며(^^;)' 꼼꼼하게 읽어보게 될테니까. 거기에 '시인장의 살인'에 이은 이마무라 마사히코의 '마안갑의 살인'이나,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무덤의 침묵', 나가우라 교의 '머더스' 리뷰도 매력적이어서 읽어야 할 목록들이 계속 쌓여가고. :)


. 그리고 미스테리아의 마지막은 역시나 추리소설 속 생생한 음식 이야기가 담긴 정은지 작가님의 글. 이번 이야기의 소재는 남부 흑인들의 소울푸드에 대한 글이었는데, 음식에 대한 생생한 소개를 보고 있자면 왜 미국에서 먹은 게 스테이크와 햄버거 밖에 없었던 건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소울 푸드는 전통적으로 미국 흑인들이 만들고 먹는 음식을 말한다. 기원을 찾는다면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대농장들에서 백인 노예주가 흑인 노예들에게 주던 음식에서 시작됐고, 살코기보다는 내장 등 저렴한 육류와 쌀, 땅콩, 오크라 등 아프리카에서 자주 먹던 식품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기름진 소꼬리를 마늘, 양파 등과 약불로 오래오래 끓이다 동부콩을 넣은 스튜. 직접 민 반죽에 복숭아나 사과 조림을 넣고 노릇노릇하게 튀겨낸 반달 모양 튀김 파이. 각종 양념에 재워 저온에서 오랜 시간 구운 돼지고기를 결대로 쪽쪽 찢어서 넉넉한 양의 바비큐 소스에 버무린 후 코울슬로와 함께 빵에 끼운 샌드위치. 포 뜬 메기를 '로리의 양념 소금'과 제네바가 직접 조합한 향신료로 간한 후 옥수수가루를 묻혀 튀기고 콩과 토마토에 조린 오크라를 곁들인 것.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비계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바삭바삭하게 구운 것. 잘게 썬 고기, 피망, 양파를 달달 볶다가 각종 향신료를 뿌리고 닭 육수로 지은 밥을 더한 더티 라이스. 피망, 오크라, 풋토마토, 채친 양배추와 양파 등의 병조림. '제네바 스위트의 스위트'에는 대런이 늘 갈망했지만 갖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 p. 175. 이중으로 지워진 소울 푸드, 애티카 로크의 '블루버드, 블루버드'(정은지의 Cul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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