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공포를 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Chapter 1. 전철에서 시작된 공포
'내 인생은 전철 인생이다.'라고 말하고 다니던 나는 20살 때부터 전철을 계속 타고 다녔다.
친구를 만나든 학원을 가든 모임을 가든 말이다.
'경기도민이라면 전철 왕복 1시간 반이면 가까운 거리지'
그 경기도민이었던 나에게 전철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26살, 처음으로 전철이 무서워졌다.
때는 심리학 스터디 모임을 가고 뒤풀이로 가볍게 술 한잔 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경기도민이었던 내게 막차는 중요했고 서둘러 탔지만 그 막차는 내게 공포의 첫 시작이었다. 전철을 타고 3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토할 것처럼 속이 안 좋고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느낌이 5초가 지나기도 전에 쓰러졌다. 말 그대로 쓰러져서 기억이 안 난다. 눈을 떴을 때는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고 위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앞섰고 서둘러 일어났으나 공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어난 순간 앞이 핑 - 돌더니 초점이 안 맞는 안경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안 보여요.."
급하게 몰려온 공포 그리고 구역감이 계속되어 도저히 전철에 있을 수 없어 서둘러 내렸고, 벽을 짚어 한 발씩 걸어가 앞에 보이는 벤치에 누웠다. 감사하게도 전철에 있던 사람들이 119를 불러 주었고 같이 내린 분도 있었다. 서둘러 와 준 119 구급대원분들의 부축을 받아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 당시 나를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도 못한 것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려 이 글에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119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던 길,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일 출근이라는 사실과 부모님이 놀라실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119에서 누워있을 때 속이 많아 나아져서 서둘러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차분한 어투로 상황을 전달했다. 필자의 엄마는 일명 '가족 바보'로 가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일이면 심장이 콩콩 뛰는 일명 '유리심장'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히 전달했고 근처 대학병원에서 부모님과 만났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전철에서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쳤기 때문에 뇌손상을 확인할 CT촬영을 하자고 제안하였고, 각종 검사를 다 받은 후 결론적으로는 나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아무 질병도 아니었다. 그렇다. 이것은 질병이 아니고 증상이었고 증상이기 때문에 약물치료나 수술과 같은 치료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내가 한 행동은 뭐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바로 다음날 전철을 탔다.
부모님의 걱정과 만류에도 말이다. 나는 그 당시 그만큼 심리학 스터디 모임에 푹 빠져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전철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낼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전철에서 쓰러진 이후, 나는 쓰러진 당시의 상황만 되면 똑같이 속이 안 좋고 어지럽고 기절할 것만 같은 증상을 느꼈다. 이 증상은'미주 신경성 실신'이었다.
미주 신경성 실신이란, 실신 중 가장 흔한 유형으로 신경 심장성 실신이라고도 한다. 극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긴장으로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박동이 느려져 혈압이 낮아지는 현상이 갑자기 나타나는데, 급격히 낮아진 혈압 때문에 뇌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나 감정적 긴장을 일으키는 일들이 원인이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서 나 역시도 쓰러진 당시 응급실에서 혈압을 쟀을 때 굉장히 낮은 저혈압이었다. 내가 쓰러진 당시의 상황은 사람이 많은 전철 안에서 서서 가는 상황이었고, 내가 쓰러진 전철역은 4호선 '선바위역' 근처였다. 이때와 같은 상황일 때, 나는 그때처럼 또 기절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식은땀이 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전철을 얼마 못가 내리고는 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내가 좋아하는 모임에도 못 나가고, 앞으로의 내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이 생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이 증상을 이겨내기로 했다.
Chapter 2. 공포를 이겨내는 연습
제일 먼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경험 그리고 책을 이용했다. 또 나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도움이 된 책은 데이비드 번스 작가의 '패닉에서 벗어나기'였고, 도움이 된 친구는 실제 나처럼 미주 신경성 실신 증상을 겪고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됐던 다른 친구는 당시 나와 연락을 주고받던 썸남, 지금의 남자 친구이다.
내가 이겨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방법, 제일 먼저 나는 나의 공포를 제대로 직시하였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이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매우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상상하고 받아들였다. 글로만 쓴다면 어쩌면 조금 잔인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그 상황을 피해서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안쓰럽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 공포의 상황을 계속 상상하며 대비했고, 공포심을 이겨내기로 했다.
'만약 또 저번처럼 쓰러지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이 들 때면, 실제로 쓰러졌을 때 어떻게 할지 대책을 세웠다. 그 대책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운 증상은 10초 내외로 짧게 느껴졌다가 금방 쓰러진다. 하지만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거나 누우면 그 증상은 금방 완화되었다. 그래서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당황하지 말고 쪼그려 앉아서 벽에 기대기로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는 , 전철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고 119를 불러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겁먹지 말자.
두 번째 방법,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노출되며 조금씩 조금씩 공포의 시간을 늘려나갔다.
즉 전철에 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공포의 환경에 적응하였다. 다행히 나는 서서 가지 않고 전철 의자에 앉아서 가면 불안한 공포 증상이 적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앉아서 타고 가며 전철에 익숙해져 갔다. 공포심을 이겨내려고 무작정 정면으로만 부딪칠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면서 적응해 나가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무조건 공격적으로 싸워서 이겨내려고 하면, 오히려 거부감에 공포심이 더 커지거나 조급함이 들어 자칫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조금 들더라도 사람이 별로 없는 전철역으로 돌아가며 자리에 앉아서 가고는 했다. 나는 이때 다행스럽게도 종착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세 번째 방법, 공포스러운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시간으로 덮어나갔다.
그 당시 나에게 '전철을 타는 시간'은 공포스러운 감정을 버텨내는 시간 혹은 불안한 마음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시간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씩 바꿔나가자고 생각했다. 따라서 전철을 탈 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이어폰으로 음량을 상당히 크게 틀었고, 주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신나는 감정으로 덮어버리려고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리니까 아무래도 쿠궁-쿠궁- 전철 소리만 들렸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사랑'의 힘은 크다고 하지 않는가. 다소 오글거리지만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지금의 남자 친구와 하는 통화는 내게 공포심을 이겨낼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꼭 연인과의 통화가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여행 갈 계획이라든지, 친구의 연애사 이야기라든지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이야기라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철만 타면 쓰러질 것 같은 공포심'을 이겨냈고, 추후 이 경험을 토대로 강의도 진행해보았다. 강의를 하다 보니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공포스러운 불안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강의에 직접 찾아와 주었던 것은 아닐까. 그 당시 찾아와 주었던 분들께 너무 감사했고 진심으로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그리고 이렇게 심리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본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예전에 미술치료사 일을 했었지만, 너무 상업적인 분위기에 회의감을 느껴 일반 사무직으로 이직했다. 다시 상담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심리적 메시지를 전달하여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심리 사업을 시작했다. 마침 심리학 모임에서 나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동업을 했고, 2년이 지나자 이 일을 본업으로 집중하고 싶어 20대 끝자락에 퇴사했다.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