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바램 Nov 14. 2024

아직 사라지지 마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거울이 깨졌고 파편이 흩어졌다.
다 쓸어내고 닦아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튕겨나간 반짝이는 파편은 언제 적 것일까?

파편이 맞을까?
깨진 게 아니라 흘린 건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것에선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던가..
어릴 적엔 머리 위 태지가 그랬고, 어느 사이 비듬, 굳은살, 짜내는 피지..  살아있는 것들의 순환은 그렇게 작고 크게 벗겨지고 벗어나는 과정을 돌고 있었다.

미처 벗겨지지 못한 것들의 분열이 깨짐으로써 파편이 되어버린 건지도..

날카로운 파편에 다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치우는 동안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빠르게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내 일상의 어느 단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조용히 다가오던 불안을 쫓아내려 액땜을 했구나!


_


한강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깨진 거울의 파편을 조심스레 줍는 기분이다. 파편은 하나하나 빛나고 있다. 조심히 주워 담아 보지만 이내 살짝 베이고, 보이지도 않게 박혀 이따금씩 따끔거렸다. 다 주워 담고 한참이 지나 잊고 있다 어느 틈에 남아있던 파편을 밟기도 했다.

그게 한강의 윤슬이었다.
마른땅에 깨진 유리가 빛났다. 따끔거릴 것을 아는데도 손을 뻗는다. 누군가는 피부에 박혀 거슬린다 하지만 그렇대도 마냥 아프지만은 않다. 어느새 박혀 아무렇지 않다가 잊을만할 때면 따끔거린다. 그 순간을 위해 작가는 파편을 잘게 부숴 둔 걸까..

안일한 삶에 나를 넘어선 세상을 보게 만든다. 내 방의 불을 끄고 희미하게 불 켜진 타인의 방을 만나게 한다. 나는 그렇게 관광지인 제주도 돌담길을 차가운 입김을 내쉬며 어두운 눈길을 뒤쫓아가게 되었다.

종이에 박힌 글이 작가를 통해 토해내는 그 시대의 여린 핏방울이라는 것도. 그 핏방울을 건조해 종이에 담아내는 동안 작가는 얼마나 수없이 쓰라렸을지 나는 가늠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어설픈 공감과 위로보다는 스스로 진실에 다가가려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려나간 손가락을 이어 다시 살려내려는 고통. 살려낸다는 것은 고통을 이어간다는 걸까?
인선의 잘린 손가락과 새, 그리고 밤을 두드리는 그림자와 바람, 모든 것에 달린 무게, 고요한 정적, 눈.. 이 모든 건 사랑 이야기였다.
나는 사랑을 읽었고, 구태여 찾아보지 않았던 제주의 아픈 사실은 스몄다.

인선과 경하의 사랑, 인선과 미워하던 엄마와의 사랑,  인선의 엄마와 외삼촌의 사랑, 인선의 아빠와 여동생의 사랑, 인선과 새의 사랑.. 온통 사랑이었다. 그 사랑 안에 스민 시대의 아픔이 나를 관통하진 않았다. 나는 그저 독자로 안녕한 상태일 뿐이었다. 묵직하게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리곤 제주 바다 앞에서 큰 숨을 내쉬며 감탄하다 한 번쯤 그들의 바다를 떠올리면 그만일 것이었다.

이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내게 박혀 이따금씩 불쑥 따끔거릴 테다. 그렇대도 나는 다시 작가의 글이 내게 박히길 바란다.

한강이라는 윤슬
책 한 권을 읽고 났는데 간밤에 내가 꾼 꿈같다.
읽는 내내 나는 인선의 집 마당의 나무에 걸린 천이었다.
사정없이 흩날리다 고요에 잠들고 다시금 휘몰아쳐 제 몸을 돌려가며 칭칭 감기다 풀려나기를 반복. 날리어 풀리길 바란 건지 더 강하게 붙잡고 싶은지 모를 파닥임이 내는 소리. 나는 그렇게 제주도 인선의 집 마당에 함께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필사






"인선이 말을 멈췄다. 간병인이 인선의 상처에 서슴없이 바늘을 찔러 넣는 동작을 나는 똑똑히 다시 보았고, 인선과 함께 숨을 멈춘 채 후회했다. 좀 전에 병원 로비에서 이미 깨닫지 않았던가,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걸?"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 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보라고, 네가 잘 보고 얘기해 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한데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 히영하게 묻엉으네.... 내가 새벡에 눈을 뜨자마자 이 애기가 죽었구나, 생각을 했주. 허이고, 나는 너가 죽은 줄말 알아그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중략)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새들이 건강해 보이는 건 믿을 수 없어, 경하야.
끝까지 고개를 들고 횃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면 이미 죽은 거야."

"아직 사라지지 마." 








작별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긴 눈 덮인 이야기가 눈꺼풀에 닿아 물방울이 되어 스민다.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고통스러워지기에 눈을 감아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렸던 수많은 사건들이 커다란 빙산을 이루고 있음을 느껴버렸다. 이제 이따금 따끔거릴 것이다.




작별하지 않으려는 것들에..









목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