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안녕, 오늘부터 나와 함께 꿈을 찾아 항해하게 될 아이들아.
나는 이 배를 이끌고 항해하는 항해사야.
너희는 이 배에 타고 한 해를 나와 함께 항해하게 될 거야.
너희는 나와 함께 다양한 곳을 항해하며 너희의 꿈을 찾아갈 거야.
너희는 이 배에서 내려서 각자 다른 곳을 향하는 배를 탈 수도 있고, 이 배에서 다른 곳을 향해 항해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
하지만, 너희는 이 배에서 약속을 배워야 해.
너희는 함께 이 배에서 고난을 헤쳐나가야 해.
너희는 이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
나는 너희의 꿈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디든 데려갈 거야.
너희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나는 무엇이든 노력할 거야.
꿈은 이루어질 거야, 너희들이라면 더더욱.
이 편지는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썼던 일기를 각색하여 올린 글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충격을 받은 점이 있다.
꿈이 없다는 것.
사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다.
지향점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던져진 아이들에게 꿈이 있냐는 질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들에게 꿈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는 지를 제대로 가르쳐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고,
아이들에게 직업을 가르쳐 본 일은 있지만 꿈을 가르쳐 본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꿈은 그 자체로 목표여야 한다.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항로가 생겨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게 하고 싶었다.
나 스스로가 갖지 못했던 꿈을,
직업이 꿈인 줄 알았던 나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는 꿈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아이들에게 보내보기도 하고, 그 글의 형식을 빌려 일기를 써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글이었고
일기로서의 편지는 나에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기 위한 글이었다.
시작은 노트를 찢어 쓴 편지였다.
꿈을 찾아 항해하는 0학년 0반 아이들에게.로 시작하는.
가끔은 A4용지에 연필로 휘갈겨쓰는 편지로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표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목적은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이 글을 다시 브런치에 각색해서 쓰는 이유는
내 꿈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내 꿈을 다시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썼던 글을 다시 쓰며,
내 꿈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