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우리 팀원들은 힘들다고 했다.
특히 내가 그만둔 자리를 대신 들어간 사람, 대표의 지인이었다.
조건은 나보다 훨씬 좋았다.
경력도 없어도 연봉은 높았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확장된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그 라면 잘해나가겠지 싶었는데...
그런데 그는 말한다.
도무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방향이 있는 듯 하지만 정작 그 방향이라는 것도 너무 모호하다고.
A를 원한다길래 a를 준비해 갔는데, a는 아니라고 하고 혹시 몰라 b, c까지 챙겨가면 왜 묻지도 않고 일을 벌이냐고 한다며 한탄을 했다.
그러면서 "이건 아니잖아"라는 말만 돌아온다고 익숙했다.
그건 정확히 내가 시달렸던 방식이었다.
애매하게 툭 던진 말 하나가 ‘지시’가 되었고 그걸 캐치하지 못하면 왜 몰랐냐고 혼났고 그걸 넘겨짚고 준비하면 왜 단독으로 움직이냐고 질책받았다.
처음엔 내가 눈치가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노력했고, 더 준비했고, 더 조심했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건 “그건 내가 말한 게 아니야”였다.
결국 돌고 돌아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다 지친 후에야 내가 했던 방식이 맞았다는 걸 어렴풋이 인정하는 분위기가 생겼지만 그때는 이미 마음이 너무 닳아 있었고 그 누구도 내게 “잘했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대표는 결코 자신의 판단 미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항상 본인이 얘기한 게 맞았고 늘 "내가 맞아"로 끝났다.
틀렸던 건 어김없이 나였고 그 정답 없는 ‘소통’ 속에서 계속 흔들려야 했던 것도 나였다.
그 지인이 말하길,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관계라 그냥 떠나고 싶지는 않다. 실망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다”며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역시 견디고 있는 중..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소통 구조는 결국 감정까지도 무너뜨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어떤 전략도 내어줄 수 없었다.
대표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나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실무를 해나가는 구체적인 방식, 그 상황 속에서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법 그런 것들을 조심스레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하나의 확신이 생겼다.
그때 내가 틀렸던 게 아니었구나. 그저, 구조가 문제였던 거였다.
누구라도 그 안에 들어가면 결국 같은 식으로 소모되고 마는 구조.
고연봉도, 더 나은 조건도, 더 좋은 사람이란 수식도 그 안에서는 무력해지는 구조.
그 사실이 내겐 위로가 되었다.
나의 무능이 아니었음을 내가 너무 부족해서 버티지 못한 게 아니었음을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그 구조 안에서는, 누구든 부서진다.
나였어도, 당신이어도.
그러니 자신을 의심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틀려서가 아니니까요.